한국과 미국은 한·미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해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4차 협상에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한국은 당초 연말까지 협상을 끝낼 계획이었으나 양측 간의 견해 차이로 인해 연내 타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지난 3, 4일(현지시간) 협상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병력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한국이 방위비를 더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에는 방위비를 증액하지 않으면 무역 보복 조처를 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한·미 양국은 그러나 이번 협상장에서 주한미군과 방위비를 연계해 논의한 적이 없다고 한국 측 수석 대표인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 대사가 5일 밝혔다.
정 대사는 이날 협상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계속 이견을 좁혀나가야 할 상황이고, 구체적인 결과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정 대사는 미국이 SMA의 범위를 벗어나는 요구를 하는지 묻는 말에 “미국 입장에서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까지는 미국측의 입장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한국에 현재보다 약 5배가 많은 50억 달러 안팎의 분담금 부담과 현행 SMA에서 다루는 항목 외에 주한미군 인건비와 군무원 및 가족지원 비용,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 역외 훈련비용 등을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사는 “우리는 기존의 SMA 틀 속에서 협상이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정 대사는 “무역 문제가 늘 언급이 되지만, 주한미군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서 전혀 논의된 바 없다”고 말했다. 정 대사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한국이 기여할 것을 요구하느냐는 질문에 “미국 측이 상당폭의 증액을 희망하고 있는 데는 다양한 의미가 함축돼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정 대사는 이번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연내 타결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으나 협상이 끝난 뒤에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연내 타결이 쉽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편, 월터 샤프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은 이날 워싱턴 DC에 있는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몇 달러를 위해 동맹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동맹의 가치가 이 협상의 전체적인 논의에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