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에서 ‘화장실 혁명’이 진행 중이다. 건강과 직결되는 위생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이미지와 경제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10명 중 6명이 야외에서 용변을 보던 인도에서는 1억개의 화장실이 새로 생겨났고, 지저분하기로 소문난 중국의 화장실도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은 공중화장실을 갖추기 위해 대대적인 시설 개선에 나섰다.
◆독립보다 중요한 화장실
지난 10월2일 마하트마 간디의 탄생 150주년 기념식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노상 배변이 없는 나라’를 선언했다. 모디 총리는 “지난 60개월 동안 화장실 1억1000만개를 지어 6억명에게 보급했다”며 “우리의 성공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총리가 국경절 행사에 나서 성과를 자랑할 만큼 인도의 화장실 문제는 중대한 사안이다. 간디가 “독립보다 화장실이 중요하다”고 말했을 만큼 카스트 제도의 영향을 받은 신분차별 의식과 종교·문화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노상 배변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 화장실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힌두교의 가르침이다. 깨끗한 것과 부정한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힌두교 교리에서 소의 똥은 신성하지만 사람의 배설물은 불결한 것으로 여긴다. 기도실과 부엌이 있는 집 안에 화장실을 들이는 것에 대한 반감도 컸다. 최하층 불가촉천민인 ‘달리트’가 변을 치우는 일을 전담해온 관습도 인도인들이 변을 꺼리게 된 데 한몫했다.
이 같은 노상 배변과 화장실 문화는 인도인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배변 속 기생충이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이 물을 식수로 쓰거나 조리에 이용하면서 면역력이 낮은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설사병과 감염병 등에 노출됐다. 유니세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인도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6억명가량이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고, 이들의 배변량만 매일 6500만㎏에 달했다. 특히 어린이나 여성들이 들판이나 골목, 강가 등에서 배변을 하다 강도나 성폭행, 납치를 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이는 모디 총리가 취임 첫해인 2014년 ‘노상 배변과의 전쟁’을 선언한 배경이다. 모디 총리는 1억개의 화장실을 지어 인도 전역의 청결과 위생 수준을 높이겠다는 ‘클린 인디아’ 캠페인을 약속했다. 실제 이 정책이 시행된 지난 5년간 59만9963개 마을에 총 1억74만8884개의 화장실이 새로 지어졌다. 인도 정부는 2014년 초 38.7%에 그쳤던 화장실 보급률이 캠페인 이후 98%까지 도달했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클린 인디아 정책으로 인도인 30만명이 설사와 영양실조에서 벗어나 목숨을 건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오래된 관습이 가장 큰 도전”
인도 정부의 발표와 달리 야외 배변 문화와 그로 인한 위생과 안전 문제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모디 총리의 ‘야외 배변 없는 나라’ 선언 한 달 전인 지난 9월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 바브케디의 한 길거리에서 온몸에 각목에 맞은 상처로 뒤덮인 10대 청소년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들은 달리트 계급에 속한 아이들로 용변을 보러 길거리에 나갔다가 집단 구타를 당했다. 카스트 제도에서 비롯된 오랜 인습 탓에 불가촉천민의 공동화장실 사용을 막은 것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집 안에서 변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이 야외 배변을 고집하는 등 문화적인 장벽도 여전히 높다. 클린 인디아 캠페인을 총괄한 파라미스와란 이예르는 “이번 사업은 인도 최대의 행동 개조 실험”이라며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사람들이 오래된 습관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클린 인디아 정책의 효과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인도 시골 주민의 71.3%만이 화장실에 접근할 수 있다고 인도 통계청 설문조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인도 시골 주민의 30%가 여전히 노천 용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부 오디샤주나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경우 시골 가구의 절반은 여전히 화장실을 갖추지 못했고, 응답자 중 3.5%는 한 번도 화장실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화장실 보급률 수치가 부풀려졌고, 화장실이 설치된 경우에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물 부족, 관리 부실로 화장실이 방치돼 있어 노상 배변이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중국도 ‘화장실 혁명’
인도의 노상 배변만큼이나 지저분한 화장실로 악명 높았던 중국도 정부 주도의 강력한 ‘화장실 혁명’을 추진 중이다. 특히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공중화장실이 주요 개선 대상이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로 2015년 4월 ‘공중화장실 개선 3개년 계획’을 세우고 200억위안(약 3조5000억원)을 투입해 6만8000개의 공중화장실을 짓거나 리모델링했다. 2018~2020년에도 중국 전역에 6만4000개의 관광지 화장실을 신축하거나 개조 공사를 할 예정이다.
시 주석은 과거 문화대혁명 시기 산시성 옌안시의 한 농촌으로 하방(관료나 지식인을 노동 현장에 보내는 것)돼 7년을 생활하면서 남녀가 별도로 이용하는 화장실을 만드는 등 비위생적인 화장실 문화를 개선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초 허베이성 정딩현 부서기로 근무할 때도 농촌의 재래식 화장실 개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 주석은 2017년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대회에서 “화장실 문제는 사소한 일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문명 건설 측면에서 중요하다”며 “관광지는 물론 도시와 농촌에서도 ‘화장실 혁명’을 추진하고, 주민 생활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취약한 화장실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장실 문제가 위생 차원을 넘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이 ‘위생 후진국’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샤오캉(小康: 의식주 걱정 없는 풍요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한 과제임을 천명한 것이다.
중앙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으로 1993년 7.5%에 불과하던 중국 농촌의 ‘위생 화장실’(분변 처리 시설을 갖추고, 벽과 지붕이 있는 청결한 화장실) 보급률은 2016년 80.6%로 확대됐고, 일부 동부 성의 경우 지난해 보급률이 90%를 넘어선 곳도 있다. 중국 국가여유국은 새로 지어진 화장실로 연인원 44억명에 달하는 중국 국내외 관광객의 화장실 이용 수요를 맞추게 됐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의 ‘화장실 재발명’ 프로젝트
화장실 문제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공익사업에 뛰어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는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을 통해 ‘화장실 재발명’ 프로젝트(위생개선연구사업)에 2억달러(약 2243억원)를 지원했다. 10여 년 전 회장직을 사임한 뒤 전 세계를 여행하던 게이츠가 저개발 국가의 열악한 위생 상태에 충격을 받은 것이 계기로 알려졌다. 화장실 보급에 세운 공을 인정해 모디 총리에게 지난 9월 ‘글로벌게이트키퍼상’을 수여하고, 중국 장쑤성의 한 초등학교에 새로운 ‘신기술 화장실’을 도입한 것도 게이츠 재단이다.
게이츠는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화장실개선사업 박람회에서 ‘인분’이 담긴 용기를 직접 들고나와 연설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배설물 안에 “200조마리의 로타바이러스, 20억마리의 이질균, 10만마리의 기생충 알이 들어있다”면서 현대식 화장실이 없어 각종 위험에 노출되는 저개발 국가의 위생 문제를 지적했다.
게이츠는 또 태양광을 사용해 자가발전을 하거나, 배설물을 화학 분해해 깨끗한 물이나 전기 또는 비료로 만들어 재활용할 수 있는 ‘자급자족형 화장실’을 개발했다. 배설물에 있는 병원균은 전부 살균 소독되는 기능도 갖췄다. 이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게이츠는 “앞으로 2억달러(약 2243억원)를 추가로 투자해 자급형 화장실을 10년 안에 가난한 나라의 대중들에게 보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