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미국의 경기’로 불리는 미 육군사관학교 대 해군사관학교의 올해 아메리칸풋볼 시합이 14일(현지시간) 열려 약 120분의 혈투 끝에 해사의 대승으로 끝났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내리 3연패를 기록한 해사는 이로써 육사의 4연승을 저지하고 설욕을 했다.
최근 하와이 진주만과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에서 벌어진 잇단 총격사건으로 침체되었던 미 해군의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 언론 등에 따르면 1890년 시작해 매년 1회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미 육사 대 해사 아메리칸풋볼 시합은 단순히 두 사관학교 생도들 간의 자존심 대결을 넘어 미국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초대형 행사다. 1년에 한 번 하는 이 경기를 ‘미국의 경기(America’s Game)’라고 부를 정도다.
미국 밖에서도 관심이 뜨거워 해군 출신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경기를 약 12시간 앞두고 트위터에 해군을 응원하는 글을 올렸다. 해리스 대사는 미 해사 졸업생으로 한국 부임 이전에 4성 제독인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
그는 특히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 옷에 ‘육군을 물어뜯어라(Bite Army)’라고 적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해군의 공식 응원 구호인 ‘육군을 때려눕혀라(Beat Army)’라는 표현을 고양이에 맞게 살짝 변형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 등의 간절한 바람이 통한 걸까. 이번 경기에선 해사가 육사를 31대7이란 비교적 넉넉한 점수차로 이겼다. 해사는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육사를 상대로 14연승을 거뒀을 정도로 압도적 우세를 자랑했으나 지난 3년 동안은 17대21(2016년), 13대14(2017년), 10대17(2018년)로 내리 3연패를 당하며 부진의 늪에 빠졌다.
마침 올해는 경기를 앞두고 미 해군의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와이 진주만에서 현역 해군 병사가 일으킨 총격사건으로 미 국방부 관리 2명이 숨진 데 이어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의 해군 항공기지에서도 위탁교육을 받던 사우디아라비아 장교가 반미감정에 휘말린 나머지 미군 장병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 3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빚어졌다.
마침 펜서콜라 희생자 3명 중 1명인 조슈아 왓슨 소위는 올해 5월 해사를 졸업한 동문이다. 그 때문에 경기에 나선 후배 해사 생도들은 진주만과 펜서콜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경건한 모습이었다. 이날 값진 승리를 거둠으로써 해사 생도 및 해군 장병들의 사기가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 해군은 펜서콜라 희생자 3명 중 사병인 모하메드 하이탐 일등병과 카메론 월터스 이등병에게 부사관 진급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하사부터 부사관 신분인 한국군과 달리 직업군인제를 택한 미군은 상병 계급부터 부사관으로 예우한다.
마이클 길데이 미 해군참모총장은 “하이탐과 월터스 두 젊은 수병은 미 해군에게 요구되는 최선의 자질을 갖췄다”며 “비록 사후이지만 부사관으로 진급시키는 것이 공정하고 적합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