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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정치적 성향 지배적… 세대 간 양극화 현상 뚜렷” [2020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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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장 기본기·구조 상향 평준화 / 자기만의 문체 보기 드물어 아쉬움 / 우리사회 전반적 문제 다룬 詩 많고 / 개인 내면에 치중하는 경향 짙어져
2020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이 끝났다. 응모 편수는 지난해에 비해 부쩍 늘어났다. 단편소설 797편(771명), 시 4646편(1168명), 문학평론 18편이 접수됐다. 예심은 소설가 정길연·해이수, 문학평론가 박철화, 시인 김성규·신미나가 맡았다. 단편소설은 11편, 시는 26명의 작품을 뽑아 예심을 거치지 않은 문학평론 응모작과 함께 본심으로 넘겼다. 올 응모작 경향을 예심위원들의 목소리로 살핀다.
2020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위원들이 응모작을 읽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규, 해이수, 박철화, 정길연, 신미나 심사위원. 이재문 기자

■단편소설/ 정길연(소설가)

소설 독자가 줄었다는 체감과는 달리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오히려 늘고 있는지 800편에 가까운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전체적으로 문장의 기본기와 구조는 상향평준화됐으나 자기만의 문체를 가진 개성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한동안 가상공간으로 무대를 확장한 판타지, 시간의 변형이나 시·공간의 자유이동을 소재로 한 작품 비율이 꽤 높았는데, 올해는 자력구제 및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청춘, 계층 갈등, 가정폭력이나 경제적 무능으로 인한 가족해체, 개인 또는 관계의 균열 등을 다룬 작품이 많이 보였다. 외부로 열려 있던 관심사가 ‘지금’, ‘여기’, ‘나 또는 너’로 좁혀졌다고나 할까.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쓰고) 싶고, 누군가가 들어(읽어) 주기를 바라는 것일 텐데, 그만큼 이 세대가 외롭고 아프다는 뜻일 테다.

■단편소설/ 해이수(소설가)

한때 대세였던 이국 공간 서사는 줄었으나 이국의 이름을 가진 캐릭터가 전면 등장했다. 이 이름은 현실질서에 편입을 거부하는 제3의 명칭으로 보였다. 옥탑방과 지하방 코드가 소멸한 자리에서 고시원과 편의점은 성업 중이다. 들끓던 길냥이들은 사라졌지만, 파충류를 비롯한 희귀 애완동물의 등장은 묘한 긴장을 일으켰다. 탈정치적 성향이 지배적이나 페미니즘 담론은 아직 진행형이다. 상당 수준의 문장력을 갖춘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예심은 극심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11쪽 내외 분량에서 5쪽이 넘도록 사건의 핵심을 간파하기 어려운 글이 대부분인 것도 아이로니컬했다. ‘소설의 구성과 구조화의 첨예한 전략’이 절실하게 요망된다. 예심을 마치고 나오는데 광화문이 온통 겨울비에 젖었다. 글쓰기는 목적이 아니라 삶의 방식일 뿐이라는 것. 크리스마스트리와 색색의 영롱한 불빛을 향해 두손을 모았다. 투고자들이 집중한 그 모든 밤들을 향해 성호를 그었다.

■문학평론/ 박철화(문학평론가)

전체적으로 작품의 질이 고르다. 이 점은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하나는 글쓰기의 평준화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의 하류지향이다. 대중의 쓰기가 평균적이라는 건 언어생활에서 최소한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일인 반면, 소설언어가 당대의 관습화된 언어에 이의를 제기하며 새로움을 찾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성과 아이, 이주여성이나 성적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런데 소설에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은 언론의 사회면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문학에서의 도덕이란 문제의 가능성을 끝까지 묻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찾고 싶었다. 서넛 그런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 김성규(시인)

올해는 작년보다 많은 시들이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투고됐다. 중학생에서부터 80세를 넘긴 어르신들까지 응모자의 연령대가 다양했으며 뛰어난 작품들이 많아 본심에 올릴 작품들을 선정하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다룬 시들이 많았다. 취직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고민부터 인공지능의 도래로 시작될 사회의 변화와 혼란, 페미니즘과 성평등 문제, 늙어간다는 것의 서러움과 요양병원에 모셔야만 하는 자식들의 죄스러움이 전반적인 주제였다. 사회현상을 반영한 작품들이었고 비판적 시각이 돋보였으나 특정한 주제로 쏠림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기도 했다. 난해시보다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시들이 많았으며 사물에 대한 사유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 작품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시를 쓰기 위해 쓴 시보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작품들이 독자들 앞에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시/ 신미나(시인)

내용면에서 세대 간 양극화 현상이 뚜렷했으며, 공감이나 타인과의 연대보다는 개인의 내면에 치중하는 경향이 짙었다. 전반적으로 우울, 어두운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응모자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젊은 세대가 주로 개인의 내면을 다뤘다면, 중장년층은 자연 예찬, 고향, 가족과 같은 소재나, 현실을 비판하는 시가 많았다. 젊은 세대일수록 타투, 고양이, 페미니즘, 브이로그, 식물과 같이 유행과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소재가 눈에 띄었고, 영어식 표기, 산문화 경향이 도드라졌다. 사회 문제를 다룬 시의 경우 사변적인 진술이 사회문제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삶에서 경험으로 체득한 내용을 쓰기보다는 기성 시인의 문법을 답습해 기교적이고 모호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힘 있고 진실한 자신만의 목소리가 부족해 아쉬웠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