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하명에서 시작된 경찰 수사로 지방선거에서 낙선했다고 주장하는 김기현(60) 전 울산시장이 이틀째 검찰 조사를 받았다. 첫 조사를 마친 김 전 시장이 “검찰이 자료를 충분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히면서 검찰이 이번 수사와 관련된 핵심 증거를 손에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16일 오전 10시 김 전 시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재소환했다. 전날 검찰 조사를 받은 김 전 시장은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찰이 벌인 측근 비리 의혹 수사 전반에 대해 검찰에 설명했다.
김 전 시장은 출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이 매우 상세하게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하명수사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답했다.
검찰은 수사를 촉발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최초 제보문건은 물론 첩보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과 반부패비서관실을 거쳐 울산경찰청까지 전달되면서 어떻게 수정됐는지를 살펴본 결과, 첩보 이첩 과정에서 내용이 일부 가공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문건을 김 전 시장에게 보여주고 사실관계와 의심되는 출처를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시장의 법률대리인 석동현 변호사는 “송 부시장이 정리한 문건 역시 나름대로 정연하고 짜임새 있게 작성됐지만 청와대가 경찰청에 내려준 건 청와대 문서 형식으로 새로 작성됐다”며 “첩보하달 과정에서 구체적인 부분이 추가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에 자신감을 내보이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검찰은 청와대의 ‘하명수사는 없었다’는 해명에 대해 “수사 결과를 확인하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성과를 자신했다.
검찰은 김 전 시장의 측근 비리 의혹을 수사한 울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 A 경정을 이날 소환조사했다. A 경정은 황운하 대전경찰청장이 2017년 울산청장 부임 뒤 발탁한 인물이다. 검찰은 A 경정을 상대로 일부 참고인 조서를 가명으로 받은 경위 등에 대해 살펴봤다. 검찰은 전 울산경찰청 수사과장 B 총경도 12일 불러 수사 과정 전반을 물었다.
황 청장 역시 검찰소환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모양새다. 황 청장은 소환 통보가 올 경우 “당당하게 갈 것”이라며 “사실 그대로 조사가 이뤄진다면 아무런 준비할 것도 없다”고 자신했다.
이어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정의롭게 수사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며 “선입견 없이 객관·중립적 입장에서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황 청장은 페이스북에 “조사받는 울산청 경찰관들의 억울함이 모함받는 충무공의 심경일 듯하다”며 이순신 장군의 좌우명인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죽기로 싸우면 살고, 살려고 싸우면 죽는다)라는 문구를 게시했다.
한편 민갑룡 경찰청장은 내년 총선 출마 뜻을 밝힌 황 청장에 대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규정상 검찰 수사를 받는 황 청장이 의원면직 제한 대상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규정에서 말하는 건 단순 의심이 아닌, 어느 정도 확인이 됐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라며 “수사 중이나 조사 중이라고 해서 불가한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고소·고발만으로 의원면직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모든 건 확인된 사실에 기초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필재·김승환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