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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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의 ‘도장깨기’ 인생… 흙수저에서 국회의장까지, 마지막은 靑?

살아온 모든 과정이 도장깨기 역사 / 가난, 검정고시, 고학생 / 샐러리맨으로 별달아 / 국회의원, 당대표, 장관, 국회의장에 이어 총리까지 가로막는 도장 모조리 격파 / 무진장서 최강 도장이라는 서울종로 진출해 단숨에 / 남은 도장은 한 곳...靑瓦臺

 

정세균(69) 국무총리 후보자의 이력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흙수저 중 흙수저에서 차기 대권 후보자 중 한명으로 우뚝 서기까지 ‘도장깨기’ 하는 심정으로 살아온 그의 삶에는 한국 현대사와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의 거의 모든 것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 한국전쟁 나던 해 깡촌에서 태어나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

 

정 후보자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산으로 둘러싸인 전북 진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진안은 인근 무주, 장수군과 함께 '무진장'으로 불리던 오지 중 오지로 삶이 팍팍하기 그지없던 지역이었다. 

 

 

집안 일을 도우면서 면 소재지 중학교까지 왕복 40리길(16km)를 걸어 중학교를 다녔지만 졸업장은 검정고시를 통해 쥘 수 있었다. 지난 8일 '전국 검정고시 동문회' 송년의 밤에선 정 후보자가 검정고시를 빛낸 동문으로 소개됐다.  

 

정 후보자는 2017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SNS에 "어린 시절 기회를 주신 선생님이 계셔서 공부할 수 있었다"며 당시 힘들게 공부했던 상황을 내비친 바 있다.

 

◆ 시골고교→공고 거쳐 신흥고 교장에게 "대학 가고 싶다. 장학금 달라" 편지...매점에서 학비 벌어 

 

정 후보자는 중졸 검정고시를 끝으로 학업을 마칠 뻔 했지만 시골 고등학교를 거쳐 전주공고에 들어갔다. 가능한 빨리 자리를 잡아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었으나 보다 큰 꿈을 꾸기 위해 대학진학이 필요하다고 판단, 전주지역 사립학교인 신흥고 교장에게 편지를 썼다. '대학을 가고 싶지만 돈이 없다. 장학생으로 입학시켜 달라'는 그를 기특하게 여긴 교장은 일종의 근로장학생으로 입학시켰다. 

 

학교 구내매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신흥고를 졸업한 정 후보자는 고려대 법대에 진학, 자신에게 기회를 준 신흥고 교장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 고대 총학생회장→쌍용그룹 상무→MBA→경영학 박사

 

깡촌에서 전주로, 다시 서울로 진출한 정 후보자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거쳐 쌍용그룹에 입사해 상무까지 올랐다. 잇단 도장깨기로 직장인들의 꿈이라는 별(임원)을 달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MBA학위(페퍼다인 대학교 경영학 석사), 경영학 박사(경희대)까지 거침없이 도전했다.

 

◆ 국회의원→집권당 의장→장관→당 대표

 

정 후보자는 1996년 15대 국회 때 이른바 DJ(김대중) 키즈로 정계에 입문했다. 지금까지 거쳐왔던 학교와 샐러리맨과는 다른 도장이었지만 하나 하나 정복해 나갔다.

 

무진장에서 4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2005년 당시 집권 여당 열린우리당 당 의장, 2006년 산업부 장관, 2008년 제1야당인 민주당 대표 등 국회, 행정부 굵직한 직함을 모조리 차지했다.

 

◆ 결정적 도장깨기 2012년 19대 총선 서울 종로 출마→국회의장까지 디딤돌 마련   

 

정 후보자는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중대 결심을 했다. 무진장을 떠나 청와대가 있는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옮기기로 했다. 정계 거물이었지만 자신의 텃밭이 아닌 정치 1번지 종로에 나선 것을 두고 많은 이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정 후보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종로 유권자를 사로잡으며 4만1732표(득표율 52.27%)를 획득, 3만6641표에 그친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 45.89%)를 누르고 당선, 5선 고지를 밟으며 주변 우려를 보기좋게 씻어냈다. 

 

20대 총선에선 서울시장 출신 오세훈이라는 강력한 도전자를 맞이 했지만 4만4342표로 3만3490표에 머문 오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이를 바탕삼아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 대한민국 의전서열 2위자리까지 올랐다.

 

정세균 국회의장(오른쪽)이 2017년 10월 25일 오후 국회 의장실을 예방한 바른정당 오세훈 최고위원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회의장에 이어 총리 후보...남은 도장은 사실상 청와대 뿐

 

정 후보자가 제46대 총리자리에 오른다면 가난, 민간기업, 국회의원 선거, 장관, 당대표, 국회의장에 이어 총리까지 대한민국의 도장이라는 곳은 거의 다 거친 꼴이 된다. 그 경우 그가 깨야할 마지막 도장은 청와대다. 

 

그동안 정 후보자가 대선 도전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극구 부인한 적도 없다. 그가 정치1번지 종로로 진출한 것도 대권 꿈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많았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총리로 지명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정세균 총리 후보자는 "국민에게 힘이되는 정부가 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뉴스1

 

자유한국당이 정 후보자에 대한 송곳 검증을 벼르고 있지만 국회 안팎에서 그의 총리 인준은 무난할 것으로 본다. 정 후보자가 ‘경제 총리’이미지만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등 문재인 내각 2기 총리 역할을 잘 해낸다면 대권 도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2022년 대선 때 그의 나이가 72살에 이른다는 점이 약점으로 거론될 수도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만 73세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만74세 때 대권을 쟁취한 바 있어 그의 마지막 도장깨기의 결정적 걸림돌은 아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