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편을 추진하는 ‘4+1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는 ‘지역구 250석·비례 50석에 준연동형(50%)’에는 합의했지만, 비례 50석에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각 당의 이익도 챙기려다보니 쉽사리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기싸움을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연동협 캡(Cap), 석패율제, 이중등록제와 같은 각종 복잡한 선거제도가 협상 카드로 나왔다. 심지어 논의에 참여조차 하지 않는 자유한국당도 선거제 개편에 대비해 자당의 위성정당인 비례한국당을 만들어 비례의석을 확보하려는 꼼수를 거론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각종 제도가 정당 득표율과 국회 의석의 연계성을 높이려는 선거제 개편 취지에 부합하려면 비례의석을 더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동형 캡
연동형 캡은 민주당이 제시한 장치로, 연비제 도입에 따른 비례의석 축소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비례의석 50석 중 30석에만 연동형 캡을 씌우고 나머지 20석은 정당 득표율대로 분배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면 지역구와 비례 의석이 연동되기 때문에 지역구 의석이 많은 거대 정당의 비례의석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정당 득표율이 40%인 A정당은 현재 합의된 50% 연동률에 따라 60석(300석× 40%× 50%)이 보장되는데, 지역구에서 120명이 당선됐다면 상황에 따라 비례의석을 1석도 건지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캡을 씌우면 정당득표율이 높은 데도 지역구 의석을 갖지 못한 소수 정당이 여럿 등장해도 30석 안에서 조정하게 돼 거대 정당의 비례의석이 보장된다. 현재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주당 지지율대로라면 민주당은 캡 적용이 안 되는 20석의 40%인 8석을 갖게 된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캡 도입을 강조하는 이유다.
◆석패율제
4+1 협의체에서 민주당을 제외한 당은 이날 석패율제 도입에 의견을 모았다. 석패율제는 일본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개편될 선거제에 지역주의 완화 장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비례의석이 고작 50석인 상황에서 석패율제를 도입하면 비례대표 취지가 되레 훼손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석패율제 도입 반대로 돌아서기 전, 4+1 협의체는 6개 권역에서 1명씩 총 6명 이내에서 당의 판단에 따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각 당의 권역별 비례대표 명단에 지역구 후보자 전체가 오르게 된다. 석패율제 대상자를 비례 1번에 넣기로 했다면 후보자 전원이 1번을 받는 셈이다. 이 중 해당 권역에서 지역구 당선자가 30%가 되지 않는 정당에서 가장 아깝게 떨어진 사람이 구제된다. 만약 A, B, C, D 4개 정당이 비례 당선권에 석패율 후보자들을 넣었다면 해당 권역에서 지역구 낙선자 4명이 살아나게 된다. 6개 권역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지역구에서 떨어진 24명이 각 당 비례의원으로서 배지를 달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후보자일수록 전국적 인지도가 높은 기성 정치인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석패율 당선자가 늘수록 소수자 배려 등 비례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기성 정치인의 입김이 큰 정치권에서 각 당은 지역구 후보자들을 권역별로 비례 1, 2번에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며 “석패율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50석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중등록제
이중등록제는 독일 시행 중인 선거 제도로 지역구 후보자 전체를 비례 명단의 같은 번호에 올리는 석패율제와 달리 일부만 명단에 올린다. 정의당 등이 요구하는 석패율제를 무산시키기 위해 민주당이 꺼내든 협상 카드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야말로 ‘중진 살리기’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비례명단에 올릴 지역구 후보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붙을 가능성도 크다. 지역구 출마자 중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뽑아 비례명단에도 올려줄지를 놓고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독일 헬무트 콜 총리가 이 제도를 활용해 정치 생명을 이어갔다.
한 전문가는 “의원내각제인 독일과 달리 이중등록제는 아직 한국 상황에서 도입하기에는 악용될 여지가 너무 크다”며 “이 제도를 도입해 21대 총선을 치르게 되면 선거가 끝난 뒤 국민적 분노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