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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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부활'인가… 냉랭한 분위기 속 미·러 군사회담

밀리 미 합참의장,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과 회동 / 10월 취임 후 첫 상견례였지만 분위기 차갑게 얼어붙어 / '시리아 내전' 주제로 토론… "오해로 인한 충돌 피해야"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왼쪽)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 미 국방부

“이번 만남이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은 아니다. 미국은 러시아와 행동을 조율하지 않는다. 다만 의사소통의 문은 앞으로도 계속 열어놓을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군부의 최고 지도자가 모처럼 얼굴을 맞대고 악수도 나눴지만 대화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했다. 18일(현지시간) 스위스 베른에서 성사된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육군 대장)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육군 대장)의 ‘상견례’ 이후 미 국방부가 내놓은 논평이 이를 보여준다.

 

지난 10월 취임한 밀리 의장이 미군 ‘서열 1위’ 장성의 자격으로 러시아군 총참모장과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군사적 충돌을 빚고 크림 반도를 불법으로 점령한 뒤 양국 군사 당국자 간 접촉을 한동안 끊었다.

 

그러다가 밀리 의장의 전임자인 조지프 던퍼드 의장 시절인 2017년 러시아 군부와의 대화가 재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 만남에서 논의한 핵심 주제는 시리아 문제였다고 미 국방부는 전했다. 시리아는 바샤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반군과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정부군 간의 대립으로 오랫동안 내전을 치르고 있다.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내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해 정부군을 적극 지원하는 중이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인권탄압 등을 이유로 아사드 정권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미군의 지상전 투입 카드는 끝내 배제했다. 시리아 정부군이 내전 도중 반군 지역에 화학무기를 사용한 물증이 드러났지만 미국은 경고에 그쳤을 뿐 응징은 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은 아예 ‘시리아 철군’ 방침을 밝혔다가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이를 번복하고 병력 일부는 잔류시키기로 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이처럼 미국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가 신속하고 대담하게 시리아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했다. 이번 미·러 군사 지도자 회동 하루 전인 17일 러시아군은 “시리아에서 실시한 차세대 전투기 시험에서 성공을 거듭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군과 러시아군이 나란히 시리아에 관여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통상의 군사훈련 도중 충돌이 빚어지거나 자칫 사소한 오해가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밀리 의장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의 만남은 이를 예방하고 상호 간의 오해를 줄일 대책을 마련하는데 초점이 모아졌다.

 

러시아군 소속 스파이 함정이 미국 남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에 몰래 진입해 위험한 작전을 실시, 미 해안경비대의 항의를 받은 사건과 흑해를 항해하던 미 해군 구축함이 러시아 군함의 감시와 추격을 당한 사건 등 최근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악재들에 대한 의견 교환도 이뤄졌다.

 

미 국방부는 러시아를 중국과 더불어 ‘현 국제질서를 교란하려는 세력’으로 여겨 경계한다. 밀리 의장은 취임 전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지금의 미국과 러시아 관계를 “냉전 종식 이후 가장 극심한 갈등 상황”으로 규정한 바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두 나라 군사 지도자의 회담은 정치나 정책 문제를 배제한 채 순전히 군사 분야로만 한정해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