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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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 변경, 간첩 못 잡게 하려고”? 정미경의 엉뚱한 주장 [FACT IN 뉴스]

정미경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정부가 45년 만에 추진하는 주민등록번호 체계 개편으로 간첩 색출이 불가능해지는 걸까?

 

행정안전부는 내년 10월부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지역번호를 없앤다는 내용의 개편안을 지난 17일 발표했다. 정미경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이를 두고 “간첩을 아예 잡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 아닌가”라며 “북에서 내려온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이 땅에 내려왔는지 아예 불분명하게 만들려 하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19일 오전 열린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왔다. 정 최고위원은 “멀쩡한 주민번호 뒷자리는 왜 바꾸냐”며 “문재인 정권은 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벌이는 것인가”라는 비판을 덧붙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같은 주장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는 17일 ‘주민등록번호 지역번호 삭제=중국 간첩을 위한 법안’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사용자는 “전라도도 전라도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국적 세탁한 중국인, 조선족, 북한인들이 국가 고위직, 핵심직, 대기업 스파이로 진출하기 편리하게 만드는 법안”이라며 “김대중이 호적제도 폐지, 차량 지역번호 삭제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주장했다.

 

주민등록번호 개편안의 목적이 간첩이 활동하기 쉽기 위함이라는 주장은 사실일까? 개편안의 목적과 주민등록번호 운영 원리 등을 통해 이를 검증해봤다.

 

◆주민등록번호 개편 목적이 간첩 활동 쉬우라고?

 

행안부가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개편하게 된 데는 개인정보 보호가 있다.

 

커뮤니티 글에는 “토종한국인들은 저런 게 전혀 필요하지 않고 불편하지도 않다”는 주장이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주민등록번호상에 있는 개인정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출처:행정안전부

현재 주민등록번호 구성체계는 1975년부터 시행돼왔다. 현재의 방식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지역번호와 등록순서, 검증번호 순에 따라 부여하는 식이다. 행안부는 이번 개편과 관련해 “그동안 주민등록번호에 처음 번호가 부여한 읍면동의 지역번호가 포함돼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차별논란이 제기됐다”며 “생년월일과 출신 지역 등을 아는 경우 주민등록번호가 쉽게 추정되는 문제가 행안부 국정감사에서 지적되기도 했다”고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임의배정이 아니라 정해진 구성에 따라 배정을 하다 보니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개인정보를 유추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작년에는 한 편의점 업주가 아르바이트 공고를 올리면서 주민등록번호를 활용해 특정 지역을 배제한 일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공고에 ”주민등록번호 중 8번째, 9번째 자리가 특정 번호에 해당하는 경우 채용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구성체계를 알고 이를 채용 차별에 활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정보를 활용해 장관의 주민등록번호 산출 과정이 시연된 적도 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생년월일과 출신 지역 정보만 있다면 대한민국 장관의 주민등록번호도 알아낼 수 있다며 국정감사에서 산출과정을 시연했다. 2017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부겸 당시 행안부 장관의 공개정보를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산출한 것이다. 이 의원은 또 올해 행안부 국정감사에서도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의 주민등록번호를 산출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검증하는 과정을 시연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변경이 신분 위조를 쉽게?

 

행안부가 밝힌 이와 같은 목적 말고도, 이번 개편이 정 최고위원의 주장처럼 간첩 활동을 용이하게 해 줄 근거가 있는 것일까?

 

주민등록번호 자체는 간첩을 식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맞다. 1968년 1월21일 북한 무장공비 30여 명이 청와대 앞까지 침투하는 이른바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정부가 주민등록 제도를 만들었다.

 

만약 행안부가 주민등록 제도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면, 이는 ‘간첩 식별‘이라는 주민등록 제도의 취지에 반한다는 정 최고위원과 같은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지역 번호를 없애는 것이 간첩을 식별하기 어렵게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북에서 내려온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이 땅에 내려왔는지 아예 불분명하게 만들려 한다”는 정 최고위원의 주장이 새터민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고 가정해도 이는 맞지 않다.

 

2007년까지 새터민의 주민등록번호에는 하나원이 있는 경기 안성의 지역코드가 부여됐다. 이를 두고 ‘해당 지역번호를 통해 새터민임을 유추할 수 있다‘며 차별논란이 제기되자 2007년 6월부터는 새로 배정된 거주지 지역코드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개정됐다. 이미 다른 국민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개편이 새터민에게 특별할 이유가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주장처럼 “국적 세탁한 중국인, 조선족, 북한인들의 스파이 진출을 유리하게 하는 법안”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뒷자리에 지역코드를 부여하지 않는 것과 신분 위조를 쉽게 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이렇다 할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장현은 인턴기자 jang54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