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원서에서 개인정보를 보고 수험생에게 “마음에 든다”며 연락했던 수능 감독관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교육부나 지방교육청 같은 ‘개인정보 처리자’가 아닌 취급자라는 이유다. 민원실에 찾아온 여성의 개인정보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내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지방의 한 경찰관이 견책 처분에 그친 것과 비슷한 사례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안재천 판사는 20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31)씨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15일, 수능 고사장 감독업무를 수행하던 중 성명과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담긴 응시원서를 보고, 수험행 B씨에게 “마음에 든다”며 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A씨가 개인정보 처리자에게서 정보를 제공받아 원래 목적 외 용도로 썼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감독관의 행위가 부적절했다면서도, 수능 감독관은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사람에 불과하므로 단지 정보를 이용한 사정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의 전화번호 이용은 취급자의 위법 행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거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 처리자’란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 파일을 운용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공공기관, 법인, 단체 및 개인 등을 말한다.
안 판사는 “이 사건에서 개인정보 처리자는 교육부 또는 지방교육청으로 봐야 한다”며 “수능 감독관으로 차출된 A씨는 수험생의 동일성 확인 등 수능 감독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개인정보 취급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취급자의 금지행위는 개인정보를 ‘누설 및 제공하는 행위’, ‘훼손·변경·위조 또는 유출 행위’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며 “이 사건에 해당하는 ‘이용’에 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무죄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A씨가 수능 감독관의 금지 행위에 해당하는 개인정보를 훼손하거나 위조 등을 한 것이 아닌, 단지 사적 연락을 목적으로 이용해 현행법상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안 판사는 “A씨의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그 같은 사정만으로 처벌규정을 A씨에게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면허증을 받으러 경찰서를 방문한 민원인에게 ‘마음에 든다’며 사적 연락을 취했던 지방의 C순경은 최근 견책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해당 순경이 개인정보 처리자가 아닌 ‘취급자’라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유권해석에 따라 신분상 처분만 했다. 경찰 공무원 징계는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 등으로 나뉘며, 견책은 당장의 지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가장 가벼운 징계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