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미관계 연결고리 끊고 우리만의 새로운길 찾아가야”
-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硏 교수
“한반도 평화의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의 연결고리를 우리 스스로 과감하게 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연구실장)는 지난 12월30일 서울 삼청동 연구소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교착국면에 선 남북 관계의 해법에 대해 이같이 제언했다. ‘용기’는 군인 출신 북한학자인 김 교수가 남북문제를 짚을 때 자주 꺼내는 단어다. 2017년 23번이나 미사일을 쏘아올렸던 북한이 이듬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고, 얼마 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았을 수 있었던 것은 용기의 발현에서 비롯됐다고 그는 주장한다.
김 교수는 “당시를 돌이켜보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들이기 위해 우리 정부의 특별한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외신과 인터뷰에서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거론했는데, 이것은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가 먼저 북한과의 관계를 뚫고 가겠다는 자신감과 용기의 표현이었으며 북한이 이에 화답한 것”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 관계가 급격히 경색된 책임에서 문재인정부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감하게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치고 갔던 정부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그 용기를 내려놓고 미국만 바라보게 된 점은 대단히 아쉽다”며 “우리 정부 스스로가 북·미 관계 틀 속에 남북 관계를 연동시켜버린 잘못은 이제 돌이킬 수도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걸린 2020년 북·미 비핵화 협상 전망도 밝지 않다고 봤다. 김 교수는 “미국 대선에서 북한 문제가 영향을 미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북한은 앞서 여러 번의 학습을 통해 미국 대선 국면에서 미국을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 현상 유지가 훨씬 선거에 유리하다고 여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설사 북·미 간의 굿딜이 이뤄지더라도 북한이 우리를 보며 웃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우리도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새로운 길은 남북과 한·미 관계의 연동성을 끊고, 남북 관계 개선의 비중을 키우며 투 트랙으로 가는 방안이다. 김 교수는 “남북, 북·미, 남한 내부의 정치적 갈등 이 3개는 함께 갈 수 없는 트릴레마(trilemma)라는 말을 하지만 영원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며 “아직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생명력은 꺼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상호주의적 남북 관계를 배제한 새로운 관계 개념 정립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하나 주고, 하나 받는 등가 교환이 아니라 북한에 큰 기대를 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묵묵히 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北 스스로 셈법 바꾸기 전에는 양보말고 인내의 시간 가져야”
- 신범철 아산정책硏 안보센터장
“새해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더라도 일희일비하지 말고 당분간은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신년을 앞두고 지난 12월20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만난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비핵화 협상 교착관계에서 무엇인가를 선제적으로 양보하면서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려 하기보다는 비핵화에서만큼은 강도 높은 요구를 해야 한다”며 이같이 조언했다.
북한이 예고한 ‘연말 시한’이 지나고, 북·미 대화 재개가 기약 없이 연기되면서 2020년 남북관계 개선이 쉽지 않으리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런 가운데서 당장 남북관계의 성과에 급급해 우리 정부가 쫓기는 듯한 태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북한이 스스로 ‘셈법’을 바꾸기 전까지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센터장은 “지금 북한이 취하고 있는 전략은 핵보유국 전략”이라며 “협상이 잘돼도 핵보유국, 협상이 결렬돼도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의 이 같은 핵보유국 전략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핵을 개발해도 미국, 중국 모두 자신을 포기할 수 없다는 믿음을 북한이 갖고 있는 한 북한의 핵보유국 전략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제재’라는 게 신 센터장의 생각이다.
신 센터장은 “이미 남북관계가 거의 중단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신년 초·중반 북한 도발이 이어지고 설사 남북관계가 중단된다 하더라도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자신들이 미사일 도발을 하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든 한국이 먼저 양보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며 “필요하면 제재 강화를 이끌어내야 하며, 핵만큼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강한 메시지를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 센터장은 “그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소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과도 협력해나갈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세컨더리 보이콧’ 등의 경우에 중국이 제재의 틀 속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특별히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일부 해제 결의안 초안을 러시아와 함께 제출한 바 있다.
신 센터장은 “설사 북·미 대화가 극적으로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대선을 치러야 하는 2020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 여론을 고려해 북한에 양보할 수 있는 것은 한정돼 있다”며 “결국 조금씩 주고받는 ‘스몰딜’, 혹은 ‘미니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中 협조 없으면 北비핵화 불가 협상 테이블 유도 절충안 필요”
- 정성장 세종硏 북한연구센터장
“중국의 협조가 없는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실패한 기존 해법에 의존하니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가 힘든 것입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지난 12월19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의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과거 2005년 6자회담 당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것도 중국이 절충안을 제시하며 합의를 유도한 덕분이라고 정 센터장은 설명했다.
중국은 지금도 정치·경제 등 주요 분야에서 북한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북한은 중국 관광객의 북한 방문 등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마저 상당 부분 무력화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미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정 센터장은 “많은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데, 북·미는 지난해 2월 싱가포르 회담 이후 협상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게 현실”이라며 “북한을 움직이려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에 인식시키고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도 커질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한국이 현재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은 중국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이는 것”이라면서 “절충안을 마련하도록 한국이 중국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남북한과 중국, 미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열어 북한의 안전보장과 비핵화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한·중이 북·미에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새해 미국 대통령 선거로 북한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어렵다고 전망하면서 비핵화협상 동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한국이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정권교체 가능성을 의식한 북한은 협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며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북한이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한·미 연합훈련 1년 유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해서는 연합훈련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의 딜레마”라면서도 “일단 비핵화 협상과정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어느 정도 양보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과감한 한반도 협력·안보구상 먼저 제안 등 적극 변화 모색을”
- 홍민 통일硏 북한연구실장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과 같은 과거의 틀에 박힌 남북관계로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북한의 새로운 길에 상응하는 과감한 한반도 협력·안보 구상을 우리가 먼저 제안하는 등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지난 12월18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세계일보와 만나 고착된 남북관계를 타개할 대책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연말 달라진 북한 정세와 관련해 30일 한 차례 추가 전화 인터뷰가 이뤄졌다.
홍 실장은 “북한이 신년사에서 한국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2019년 신년사에서 한국을 향한 제안이 많았지만 결국 이뤄진 것이 없었다. 북한은 이를 빌미로 조건부 남북관계 단절을 시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북한이 한국에 대해 냉소적인 것과는 달리 최근 북한 매체의 대미 직접 비판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근거로 미국과 대화의 끈은 놓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남북관계의 패턴과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현재 남북 경색 국면을 타개할 여지가 없다”며 “아무리 합의해도 이행되지 않는 현재 구조를 절연시키고 정부가 과감하게 전략적, 자주적 공간을 만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홍 실장은 북한의 ‘새로운 길’이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은 6자회담 방식의 다자안보협력 틀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한이 갑자기 군사적 도발로 가는 상황도 원하는 그림이 아니고, 북·미가 협력하는 것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며 “이미 중·러가 내놓은 평화프로세스 공동작업도 상당 부분 진척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도 미국에 모든 걸 맡기기보다 전통적 우방과 함께 가는 길을 마다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새해 대통령 선거로 인해 북한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다.
홍 실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새해 북한 문제에 집중할 동력이 별로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재선 가도에 북한과의 불확실한 협상보다 차라리 긴장 국면이 보수층 결집을 통한 이익이 크다고 볼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당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거나 하진 않겠지만 단계별로 도발 강도를 높여갈 순 있다”며 “새로운 길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전략적 틈새를 활용해 미국이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무기의 개발 사실을 공개하는 수순부터 성능 실험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위기를 높여갈 수 있다“고 봤다.
홍 실장은 그러면서 “남북관계가 대치국면으로 치닫지 않게 관리하는 전략과 함께 과거 사업이나 합의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프레임으로 남북관계를 구상하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