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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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발전소 멈추니 당진 배추밭엔 석탄재가 사라졌다 [연중기획- 지구의 미래]

<4> 미세먼지 저감 위해 겨울철 가동중단 효과 / 주먹구구식 대응 이제 그만 / 발전소 주변 석탄가루 당연 생각 / 2018년엔 김장 못할 정도로 오염 / 수도권 등 공기질 개선에도 기여 / 더 심각한 문제는 ‘온실가스’ / 이산화탄소 대부분 그대로 배출 / 포집설비 쓰면 저감효과 크지만 / 경제성 약해 국내선 3곳만 갖춰
충남 당진시 석문면 당진석탄화력발전소 전경. 당진화력발전소 민간환경감시센터 제공

“작년에는요, 석탄재가 배춧속까지 파고들어잖유. 수도권에 전기 대느라고 여기 당진 사람들이 고생 많았슈.”

 

지난 16일 충남 당진시 석문면에 자리한 당진화력발전소 앞. 발전소를 마주 보고 자리한 민간환경감시센터(이하 감시센터)에서 이인수 당진시에너지센터장이 말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주민이기도 한 그는 “반나절 사이에 차량에 석탄가루가 점점이 내려앉기도 하고, 지난해에는 이곳 배추로 김장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석탄재가 끼어있었다”고 했다.

 

충남은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60기 가운데 절반인 30기가 몰려 있다. 당진은 액화천연가스(LNG)와 바이오매스를 사용하는 복합화력발전소(2500㎿), 제철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로 돌리는 제철화력 발전소(800㎿) 등 총 9310㎿ 규모의 발전설비를 갖췄는데 그중 가장 덩치가 큰 건 6000㎿급 당진화력발전소다.

 

이제 와 생각하면, 줄일 수도 있는 오염도 그동안 대충 넘기며 살았다고 했다. 안효권 감시센터 사무국장은 “으레 발전소 주변은 석탄가루 날리겠지, 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컸다. 발전소에서도 민원 들어오면 주민한테 술 사주고, 물품 지원하고 이렇게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으로 넘어갈 때가 많았다”며 “저탄장 석탄은 선입선출 원칙을 지키도록 하고, 바람이 심할 때는 경화제 살포하는 식으로만 관리해도 비산먼지는 크게 줄었다”고 했다.

 

여기에 이번 겨울에는 획기적인 조치가 더해졌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겨울철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중단이 시작된 것이다. 정기점검이나 고장·수리가 아닌데도 석탄발전소를 끄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지난해 충남 당진시 석문면 당진석탄화력발전소 주변에서 찍은 자동차 보닛. 당진화력발전소 민간환경감시센터 제공
당진석탄화력발전소 주변에서 찍은 배추. 당진화력발전소 민간환경감시센터 제공

◆충남 석탄발전소 미세먼지, 강원도까지

 

지난 10월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겨울(12∼2월)에는 9∼14기, 봄(3월)에는 22∼27기 가동중단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받아 정부도 지난달 겨울철 석탄발전기 8∼15기를 가동정지하고 나머지는 최대한 상한제약(80% 출력)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에는 12기를 가동중단했는데 24일 현재는 최저 감축 규모인 8기로 줄어든 상태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수요 피크인 1월을 대비해 가동중단 규모를 순차적으로 줄였다”며 “그 대신 상한제약을 최대 49기까지 늘리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했다.

 

당진화력발전소에서는 이번 겨울 4·6호기가 가동중단됐다. 발전소 인근에서 이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까.

 

이곳 주민이자 당진시에너지센터 박미상 교육연구팀장은 “비중이 무거운 석탄가루는 마을 인근에 떨어지니까 줄어드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면서도 “질소산화물(NOx), 황산화물(SOx) 같은 건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나가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뚝 떨어졌다고는 느끼기 어렵다”고 했다. NOx와 SOx는 공기 중에서 광화학반응을 통해 미세먼지로 변신하는 전구물질이다.

박 팀장의 말처럼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중단의 혜택이 오롯이 특정지역으로 한정되는 건 아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펴낸 ‘환경평가 지원을 위한 지역 환경현황 분석 시스템 구축 및 운영’ 보고서를 보면 대전 미세먼지(PM2.5)의 경우 대전에서 자체 배출된 SOx보다 충남에서 날아온 SOx의 기여도가 3배 더 컸다. 세종시는 NOx, SOx, 암모니아,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PM2.5(직접 배출량) 모두 세종 자체 배출원보다는 충남의 영향이 더 컸고, 심지어 강원에서도 충남발 SOx가 강원 자체 배출량보다 더 많이 미세먼지를 만들었다. 다시 말하면, 특정 지역의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멈추면 그 효과는 광역으로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 LNG 발전소 가동률을 높일 계획이다. 이를 두고 ‘LNG는 수도권에 많아 수도권 공기질은 더 나빠진다’, ‘LNG 가스상 오염물질은 기술적으로 걸러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LNG 발전소는 석탄발전소보다 미세먼지 배출량이 10분의 1∼6분의 1이고, 미세먼지 외 수은, 크롬 등 유해 대기오염물질은 수십분의 1 정도다.

◆석탄발전소의 진짜 문제, 온실가스

 

석탄화력발전소의 대기오염물질은 대부분 석탄을 때는 과정에서 나온다.

 

석탄은 탄소(C) 덩어리이기 때문에 이론상 석탄을 태우면(태운다는 건 산소와 결합시킨다는 뜻) 이산화탄소(CO₂)만 나와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석탄에 황이나 질소, 무기물이 미량 섞여 있고, 이 때문에 SOx, NOx 같은 미세먼지 전구물질이 함께 배출된다.

 

그런데 이런 미세먼지 물질들은 탈질·탈황설비와 집진기 등으로 상당히 저감시킬 수 있다. 영흥화력을 예로 들면 2004년 준공된 2호기에 비해 2014년 준공된 6호기는 미세먼지 배출량을 57%까지 낮췄다.

 

그럼에도 친환경에너지는 물론 LNG와 비교해도 미세먼지 발생량이 훨씬 많기 때문에 겨울·봄철 가동중단, 배출기준 강화 등 점점 센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런데 석탄화력이 치르고 있는 ‘미세먼지와의 전쟁’은 전체 지구 환경 차원으로 전선을 넓히면 예고편에 가깝다.

 

국내 5개 발전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2억1078만t(2017년 기준), 미세먼지는 약 4만t(2016년)이다. 이를 단순화하면 발전소 굴뚝에서 미세먼지가 1만큼 나올 때 이산화탄소는 5200배 이상 더 나오는 셈이다.

중부발전 관계자는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인체에 유해한 대기오염물질은 아니고 화학적으로도 안정된 기체여서 대부분 그대로 공기로 내보낸다”고 했다.

 

이산화탄소 저감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부발전은 보령화력발전소에 습식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CCS)를 가동 중이다.

 

낮은 온도에서는 이산화탄소와 결합하고, 높은 온도에서는 방출하는 충전제를 써서 이산화탄소만 따로 분리해 낸 다음 이를 영하 20도, 20바(bar)의 압력으로 액화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90% 이상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있다.

 

문제는 상업성이 없어 이를 모든 발전소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설치비, 운영비 등을 따졌을 때 경제성이 약하고, 액화한 이산화탄소를 어디에 저장하거나 사용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취약하다”며 “CCS가 비교적 활발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유전과 연계해 석유를 채굴할 때 압력을 가하기 위해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쓴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보령화력(1∼8호기) 중 7, 8호기에만 CCS가 설치돼 있고, 8호기의 경우 전체 500㎿ 중에서 10㎿에만 이 설비가 있다. 전국적으로는 CCS를 갖춘 곳이 보령화력과 하동화력, 태안화력 세 곳뿐이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는 몇 달 전 한 인터뷰에서 “미세먼지가 동네 뒷골목 깡패라면, 기후변화는 핵폭탄 수준의 위험”이라고 비유했다. 진짜 적과의 싸움은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다.

◆배기가스 잘못 줄이면 미세먼지 되레 늘어

 

국내 미세먼지의 70%는 굴뚝이나 자동차 배기구에서 먼지 형태로 배출된 게 아니라 가스로 나왔다가 대기 중에서 먼지로 만들어진 ‘2차 생성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의 상당 부분은 가스상 전구물질인 질소산화물(NOx)과 황산화물(SOx) 저감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질소산화물을 잘못 줄일 경우 미세먼지가 오히려 더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다. 이름하여 ‘질소산화물 불이익’(NOx disbenefit)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NOx의 일종인 일산화질소(NO)는 오존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NOx를 줄이면 오존은 늘어난다. 그런데 오존은 NOx를 질산으로 만들고, 질산은 암모니아와 결합해 2차 먼지(질산암모늄)가 된다.

 

즉 NOx가 매우 많은 곳에서 이를 어설프게 줄이면, 늘어난 오존 때문에 2차 미세먼지는 오히려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경유차가 많은 서울 등 대도시에서 발생하기 쉽다.

 

따라서 대도시의 미세먼지 개선을 위해선 NOx를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미세먼지 2차 생성에 관여하는 다른 오염물질도 함께 줄여나가야 한다.

 

예컨대 암모니아는 농촌 지역,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은 공장, 항만에서 많이 배출되는 만큼 NOx 저감이 실질적인 미세먼지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시골의 축분, 화학비료, 산업단지와 항만의 염료 사용이 병행돼야 하는 것이다.

 

김순태 아주대 교수는 한국대기환경학회지에 발표한 ‘수도권 초미세먼지 농도모사’ 논문에서 “수도권 도심 지역에서 충분하지 않은 NOx 감소방안은 미세먼지 농도 감소에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며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전국적인 NOx 저감이 이뤄질 경우, 질소산화물 불이익이 이익으로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진=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