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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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2020년, 한국 외교의 지평을 열자

김정은 핵·경제병진 노선 고수 / 北 비핵화는 공염불 돼가는 듯 / 지난 2년 정부 외교 ‘갈팡질팡’ / 2020년은 ‘할 수 있는 외교’를 해야

2020년은 탈냉전 30주년이자 독일 통일 30주년이며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탈냉전의 시대가 출범한 지 30년이 됐으나 한반도는 탈냉전시대에 냉전의 섬으로서 아직 냉전기적 상황이 잔존하고 있다. 1990년 당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공산주의는 올해 죽었다. 나와 우리의 일생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이것이다. 신의 축복으로 미국은 냉전에 승리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데탕트시대를 함께 연 중국과 새로운 제2의 냉전을 시작하고 있다.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정치학

독일이 통일된 후 세계는 한반도의 통합을 내다봤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낙관적인 전망이 이어졌다. 물론 비관적인 전망도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독일의 분단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외적 환경변화의 결과라면, 한국의 분단은 거기에 내전으로 인한 내적 상황변화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방 정국 이후 분단 한국은 지속되고 있다. 통독 30주년을 기념하는 독일 국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사실상 한·미혈맹이 맺어진 지 70년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년여간의 기대에도 남북한 관계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넘어가고 북한 비핵화는 공염불이 돼 가고 있다. 한·미관계도 이완돼 가고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도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남북한 모두 주변 4대 강국의 외교적 압박에 휘둘리며 그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형국이다. 평화를 외치지만 전쟁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30년, 지난 70년의 세월을 우리는 어떻게 보낸 것인가.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은 실패한 것인가. 그 성패를 떠나 2020년은 한국 외교의 새로운 전환점이 돼야 한다. 그 뇌관은 올해로 판명 날 북한의 비핵화 여부이다.

이례적인 나흘간의 노동당 전원회의를 마무리하고 흘러나온 소식은 ‘김정은이 핵·경제병진 노선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대화의 여지를 남기기는 했지만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재개와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을 공언하고 있다. 결국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가더라도 핵무기 개발을 통한 정권안보 유지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정책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로운 도발을 위한 ‘명분 쌓기’에 들어간 듯하다.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예측할 수 없이 강대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것은 도발을 예고한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인정한 점은 그 현실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난 2년간의 협상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속내는 드러났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고 핵 군축 협상만이 가능할 뿐이다. 북한은 정권 보존을 위한 최소한의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해제 및 경제지원에 따라 핵무장 수준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는 그 타협의 접점을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우리의 외교적 입장을 재정립해야 한다. 지난 2년여간 정부는 중재자 역할을 하자니, 상황논리에 맞게 강대국에 부응하자니, 북한을 달래서 협상테이블에 끌어내자니 갈팡질팡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주변국가로부터 외교적 신뢰를 잃고 고립돼 가고 있다. 2020년은 한국 외교에서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그 첫걸음은 주변국과의 신뢰회복이다. 나아가 균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외교가 돼야 한다. 편향된 선거용 외교는 국익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올 한 해 정부는 ‘하고 싶은’ 외교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외교를 해야 한다.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