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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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경제 번영 vs 사회 안정

서방 선진국 이민 수용으로 경제 발전 / 韓, 보수적 침식과 획기적 수혈 기로에

호주의 대표 도시 시드니와 멜버른을 오가며 2020년을 맞았다. 지구촌 기후변화로 폭염과 산불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호주는 여전히 국제적 명성을 자랑하는 신년 불꽃놀이로 화려하게 2020년대를 시작했다. 밤하늘에 다양한 색상의 불꽃이 아름다운 별빛을 연출하듯 땅에서는 백인과 원주민, 중국이나 인도계 등 각양각색의 사람이 환호하며 축제를 즐겼다.

호주는 1970년대까지 ‘백호(白濠)주의’를 내세우며 유럽 출신의 이민자만 받아들였지만 이후 문호를 개방해 높은 교육수준의 젊은 인재를 세계로부터 적극 수용했다. 덕분에 1973년 이후 호주의 인구는 1300만명에서 2500만명으로 2배 늘었고, 지속적인 성장 가도를 달려 경제규모는 21배 커졌다. 2018년 호주의 1인당 국민소득은 구매력평가기준(PPP)으로 5만달러가 넘는다.

세계의 경제 선진국은 크게 두 모델로 나뉜다. 서방 선진국은 거의 모두 이민을 적극 받아들여 경제발전의 동력을 살렸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세계의 노동력을 흡수해 인구 고령화로 인한 경제의 동맥경화를 극복하면서 활력을 유지해 나가는 세력이다.

반면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는 이민을 통한 경제활성화보다는 전통적 민족 정체성을 보호하면서 사회안정을 선호한다. 외국 노동력의 유입이나 정착을 최대한 막음으로써 문화적 동질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그 결과 일본 인구는 2008년 1억2800만명의 정점을 찍은 뒤 매년 감소하는 중이다. 지금 봐선 한국이나 중국도 일본과 같은 침체의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처럼 선진사회의 미래는 경제번영을 중시하는 서방 모델과 사회 안정을 선택하는 동아시아 모델로 갈린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이나 영국의 EU 탈퇴 선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방 모델은 때때로 심각한 정치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동아시아 모델은 무척 안정적인 만큼 확실하게 늪으로 서서히 침몰하는 존재와 같다.

서방국가 가운데 호주가 특출한 이유는 극단적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유럽 같은 정치적 혼란을 피하면서 안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구 500만명이 넘는 시드니 시민 중 46%가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뉴욕이나 런던의 38%보다도 훨씬 높다. 그럼에도 호주인 82%가 “이민이 호주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한다.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의 특징을 살려 불법이민을 철저하게 금지하면서 우수한 인재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현명한 정책을 실행한 덕분이다.

2020년대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일본이나 중국처럼 오랜 민족의 전통을 평화롭게 유지·계승하면서 부지불식(不知不識) 화석이 될 것인가. 아니면 호주나 캐나다처럼 끊임없이 새 피를 받아 젊은 나라, 역동적인 나라로 다시 일어설 것인가. 한국이라는 민족공동체의 운명은 이제 보수적이고 편안한 침식과 획기적 수혈을 통한 도전의 기로에 있는 셈이다.

가장 큰 비극은 민족공동체는 약해지는데 우수하고 젊은 한국 인재들은 해외로 나가 다른 민족의 운명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 기여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호주의 개방적이면서도 선별적인 이민수용정책은 21세기 우리의 긴 미래를 고민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