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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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영화산책] 삶의 무게

신자본주의 약육강식의 경제체제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는 근로자들의 현실은 더욱 열악해졌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일을 공급하는 새로운 시대인 ‘긱(GIG) 경제’ 시대에는 많은 사람이 플랫폼과 단기로 계약을 맺어 일을 제공한다. 명목상은 사업주이지만, 플랫폼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디지털 시대의 특수고용 근로자인 것이다.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이 플랫폼 근로자의 처우를 숙고하게 만드는 ‘미안해요, 리키’로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소외계층 복지 문제의 맹점을 드러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지 3년 만이다.

영화는 영국의 뉴캐슬에 사는 택배기사 리키(크리스 히친)와 임시직 방문요양사 애비(데비 허니우드) 부부의 삶의 조건을 리얼하게 그린다. 리키는 생계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될 것으로 여겨, 아내의 차를 팔아 택배 차량을 구입하고 택배회사와 계약을 맺는다. 차가 없어진 아내는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곳저곳에 방문돌봄을 다녀야 하고, 자주 늦는다는 핀잔까지 들으며 지쳐간다. 리키의 택배회사 매니저는 “이 기계가 누가 살아남고 죽는지 결정하니까 이 바코드 기계를 행복하게 하시오”라며 하루 14시간 배송의 족쇄를 건다.

이들 부부가 일에 녹초가 되는 동안, 사춘기 아들은 말썽쟁이가 돼 이런저런 사고까지 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로서 가져야 할 시간마저 낼 수 없는 형편에 가족관계도 현실 상황도 더욱 악화돼 간다. 소소한 행복에 웃음짓는 가족의 단란한 모습조차 위안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현실은 비관적이다.

‘배송 위치 추적’ 시스템은 소변 보러 갈 시간도 없게 만들어, 짐칸에서 페트병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사적인 일로 예외는 없으며, 모든 예외는 택배기사가 그 비용을 배상해야 한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돼도, 한쪽 눈이 안 보여도 가족이 거리에 나앉지 않으려면 택배 차량을 몰아야만 하는 상황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국의 상황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원제인 ‘소리, 위 미스트 유(Sorry, We Missed You)’는 더 많은 사람이 긱 경제에 의존하게 될 시대에 우리가 누구를 놓쳤는지 누구에게 미안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