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 열풍이 진원지인 미국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보통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대응방식으로 택하던 명예훼손 고소를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하고 나선 것이다. 가해 지목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명예훼손 고소가 피해 여성에게서 늘어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미 법조계는 해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미투 운동의 새로운 전장: 명예훼손 고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같은 흐름을 상세히 전했다. 미투 열풍 2년여가 지나면서 눈에 띄는 변화다. 공소시효 문제 등 성폭력 고소의 법적 제약이 가해자 단죄를 오히려 힘들게 한다는 판단에 따라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이날 이 기사를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한 미국의 배우 애슐리 주드가 대표적인 예다.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을 폭로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그는 트위터에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감으로써 명예훼손은 물론 불공정 경쟁 초래, 경제적 기회를 앗아간 혐의로 (와인스틴을) 고소한다”고 밝혔다.
주드의 사례는 매우 쉽게 반복돼 온 패턴이다. 38년 전 10대 여성 4명과 성적 접촉을 시도했다고 알려진 미 정치인 로이 무어는 2017년 피해 여성의 폭로 내용이 “악의적으로 날조되었으며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국민 배우에서 성범죄자로 전락한 빌 코스비(2018년 최대 징역 10년 선고) 역시 2015년 피해 여성들의 주장을 “판타지 소설”이라거나 “도를 넘은 터무니없음”이라고 매도했다가 명예훼손 고소까지 당했다.
이처럼 피해 여성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로부터 보통 ‘거짓말쟁이’로 매도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를 하게 된다고 NYT는 전했다. 심한 경우 오히려 피해자가 사회적 매장을 당하는 2차 피해로 인해 다른 피해자들까지 두려움으로 침묵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
올해는 이런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버지니아 주프레의 변호사 시그리드 맥코울리는 NYT에 밝혔다. 제프리 앱스타인의 안마사였던 버지니아 주프레는 10대 때 앱스타인과 친분이 있던 영국 앤드루 왕자와 강제로 성관계를 맺어야 했다고 폭로한 인물이다.
명예훼손 전쟁이 난무하게 되면 피해 여성들을 도리어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고 결백을 밝히려는 피해자들의 움직임은 점점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제 62세가 된 빌 코스비 사건의 피해자는 “나는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이를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소송 배경을 담담히 밝혔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