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노무현 수사 때 ‘나쁜 빨대’ 정체, 11년 만에 드러나나

이인규 전 검사장 귀국 계기로 ‘논두렁 시계’ 의혹 조사 본격화
2009년 4월30일 대검 중수부에 출석해 밤샘 조사를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튿날인 5월1일 새벽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기 전 손을 들어 취재진에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당시 변호인이던 문재인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2009년 검찰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피의사실 공표 논란을 일으켰던 이른바 ‘나쁜 빨대’의 정체가 11년 만에 드러날지 주목된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서 수사를 지휘한 이인규(사진) 전 검사장이 일명 ‘논두렁 시계’ 언론 보도 경위와 관련해 최근 3차례 검찰에 서면 진술서를 제출한 것으로 15일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성상헌)는 SBS가 이 전 검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맡아 수사 중이다. 이 전 검사장은 ‘논두렁 시계’ 관련 SBS 보도를 지목해 ‘배후에 국가정보원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는데, SBS가 이를 문제삼아 지난 2018년 11월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 당시 외국에 체류하고 있었던 이 전 검사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 협조할 결심을 굳히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날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에게) 빨리 처리를 해달라고 스스로 진술서를 제출한 것으로 검찰이 요구한 건 아니다”며 “벌써 1년이 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일명 ‘논두렁 시계’ 사건은 KBS가 2009년 4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스위스 명품 시계를 뇌물로 제공했다’는 취지의 단독보도를 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SBS가 ‘권양숙 여사가 문제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더 커졌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으로부터 명품 시계를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인 것은 사실’이란 취지로 KBS 보도 내용이 맞는다고 확인해줬다. 그러면서 “우리(검찰) 안에 나쁜 빨대가 있다. 나쁜 빨대를 색출하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빨대’란 은밀한 취재원을 일컫는 언론계 은어로, 검찰 관계자 중 누군가가 KBS 측에 피의사실을 흘려줬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이와 관련, 이 전 검사장은 2018년 6월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KBS 보도는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해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간 국정원 행태와 SBS 보도 내용,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SBS와의 개인적 인연 등을 고려해 볼 때 보도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혔다”고 밝혀 SBS 보도 역시 국정원 개입이 의심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 후 국정원과 KBS, SBS 등에서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이 사안을 조사했으나 검찰에서 누가 수사 상황을 국정원측에 흘려줬는지, 국정원은 또 어떤 경로를 거쳐 KBS 보도가 이뤄지게 했는지 등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SBS의 경우 “자체 조사 결과 ‘논두렁 시계’ 보도에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 전 검사장이 귀국하고 이를 계기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2009년 ‘나쁜 빨대’로 지목됐던 사람들의 정체가 과연 누구인지 11년 만에 명확하게 밝혀질 것인지 법조계 시선이 집중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