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송영애의 영화이야기]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자막’이란 장벽의 높이

 

지난 5일(현지시간)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사진) 감독은 ‘기생충’으로 외국영화상을 수상하며 “자막이라는 1인치 정도의 장벽을 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특별한 소감을 남겼다. 

 

이번 칼럼에선 미국 관객들에게 영화 자막이 얼마나 높은 장벽인지 박스오피스 데이터를 참고해 살펴볼까 한다. 미국 관객들은 자막 있는 비영어권 외국영화들은 잘 안 본다는 게 사실일까.  

 

답 먼저 얘기하자면 ‘그렇다’. 미국 관객들은 비영어권 영화를 포함한 외국영화 자체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관에 가서 보는 영화 10편 중 외국영화가 1편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세계영화산업 결산 관련 보고서들에서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약 17년이라는 기간 동안의 통계를 찾아봤다. 미국 내 전체 영화 매출 중 외국영화 매출 비율은 2000년 4.3%, 2001년 5.7%, 2003년 3.7%였다. 2007년에는 9.9%로 점유율이 증가했지만, 2013년 5.4%로 감소했다. 2015년에 다시 반짝 증가해 11.2%를 기록했으나, 2016년에는 다시 6.4%로 내려앉았다. 

 

 

이후 통계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크게 달라졌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이 통계는 외국영화 통계다. 외국영화 중에는 영어권 국가의 영화도 포함돼 있으니, 비영어권 영화 즉 자막을 필요로 하는 외국어영화는 더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영화관객들이 자막이 불편해 외국영화를 안보는 건지, 외국영화를 안보다 보니 자막에 적응할 기회가 없었던 건지, 혹은 자국영화 보기에도 바쁜데 외국영화까지 볼 필요가 아예 없어서인지 그 배경을 명확히 할 수 없겠으나, 봉 감독 언급대로 미국영화 관객들이 자막을 읽으며 외국영화를 보는 경우가 매우 적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찾아봤다. 2016년 기준 한국 영화시장 매출 중에서 비 한국어 영화 즉 외국영화가 차지한 비율은 46.8%였다. 상영작 매출 기준으로 한국영화 점유율은 53.2%이었고, 미국영화 점유율은 42.2%, 그 외 국가 영화들 점유율은 점유율 4.6%였다.  

 

2019년 상반기 기준으로도 한국영화 매출액 비중이 43.4%였으니, 우리나라 관객들은 비록 다양한 외국영화를 보고 있지는 않지만, 연간 영화 관람 경험 중 절반 이상은 자막을 읽으며 영화를 보고 있다. 

 

관객들이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글자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대사 내용을 번역하고 축약해 자막으로 옮기는 일은 만만치 않다. 충실한 자막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관객들이 자막을 쉽게 읽는 것도 아니다. 영화를 보며 동시에 긴 자막을 읽는 행위 자체가 모두에게 편안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영화를 자주 보는 관객들에는 익숙한 행위이지만, 자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행위로 적응 기간이 좀 필요하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다 보면 첫 번째 관람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영상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책상 위에 저 물건이 있었구나’ ‘저쪽 뒤에 누가 있었구나’ 등과 같이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자막까지 추가가 되면,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시각적 능력치를 더더욱 발휘해야한다.    

 

자막 읽기만 익숙해진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시청각적 적응이 더 필요하다. 한국어나 영어 이외 언어의 영화를 보다 보면 자막을 통해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낯선 말투나 표정 등 때문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등 낯선 문화에 대한 차이를 느낄 때도 있다.  

 

봉준호 감독(가운데)과 배우 이정은(왼쪽), 송강호가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실 영화 역사적으로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자막에 적응해야하는 시절도 있었다. 1927년 최초의 장편 상업 유성영화가 개봉되고, 1930년대 초 유성영화가 대중화되기 이전까진 그랬다. 

 

녹음을 하지 않았던 무성영화들에는 ‘간자막(間字幕)’이라고 해서 영화 커트와 커트 사이에 오롯이 자막만 채워진 커트가 삽입됐다. 다음 장면을 설명해주기도 했고, 조금 전 입놀림으로만 본 배우의 대사를 적어주는 식이었다.(물론, 문맹자를 위해 영화관에 고용된 해설자(변사)가 자막을 읽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봉 감독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사 수상 소감 마지막에 “우리는 ‘시네마(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남겼는데, 영화는 더빙이나 자막과 상관없이 관객들이 눈과 귀로 이해할 수 있는 시청각적 영화언어를 기본으로 한다. 거기에 음성언어와 문자언어가 추가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고.   

 

다양한 영화 보기를 통해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영화관객에게는 자막이라는 장벽이 높지 않으니, 국적이라는 장벽만 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예고 -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올해부터 기존 ’외국어영화상’ 부문 명칭이 ’국제영화상‘으로 바뀌긴 했는데, 다음 칼럼에선 ’기생충‘과 기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들의 미국 내 흥행 규모를 살펴볼까 한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사진=AP 연합뉴스, CJ 엔터테인먼트

 

*해당 기사는 외부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