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운영될 줄 알았다면 들어오기 전 심각하게 고민했을 텐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서울 성북구의 한 청년매입임대주택(이하 임대주택)에 입주한 A씨는 “돈만 있으면 임대주택을 떠나고 싶다”며 분통을 터트리다 이렇게 후회했다.
해당 건물 1층 로비는 쓰레기와 악취로 가득하고, 경찰까지 출동할 정도로 입주민간 층간 소음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임대주택을 공급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입주민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또 다른 입주자 B씨는 “지난해 11월 문제가 언론에 알려진 뒤 LH 등이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정부는 무턱대고 임대주택 공급만 늘리고 관리는 뒷전”이라며 ”무엇이 진정한 ‘주거 복지’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문제 제기에도 여전히 분리수거 안된 쓰레기 ‘산더미’
문제의 임대주택은 지난해 11월 1층 로비에 분리 수거가 안된 쓰레기로 가득 찬 모습을 담은 사진이 온라인상에 퍼지며 논란이 됐던 곳이다.
지난달에도 1층은 쓰레기들 탓에 통행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A씨 주장대로 입주민간 불화를 부르는 층간 소음 갈등도 심각하지만 제대로 된 제재도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리 수거가 안된 쓰레기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당시 성북구청 청소행정과는 임대주택 사업 주체인 LH에 청결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성북구청 관계자에게 문의했더니 “(청결명령 후) LH쪽에서 ‘관리업체를 두고 쓰레기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상은 달랐다. 지난달 21일 당시에도 쓰레기 문제는 여전히 심각했다. 분리 수거함이 설치됐지만 쓰레기들은 그 앞에도 쌓여있었다. 종량제 봉투에 담지 않은 일반 쓰레기도 쉽게 눈에 띄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엔 비닐에 싸인 채 버려진 찌꺼기가 들어있었으며, 벽면엔 입주자가 쓴 것으로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고양이 모래를 검정 봉투에 담아 버리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A씨는 “폐쇄회로(CC)TV가 건물 입구 쪽에만 있고, 그마저도 관리 사무소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유명무실하다”며 무단 투기자 색출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입주민들 “LH는 월세, 관리비 받으면서도 책임은 회피”
입주민들은 LH와 주무 부처 국토교통부 등이 관리 주체가 ‘비양심 입주민’ 제재 및 퇴소 등 입주민 관리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통 원룸 임대건물에선 집주인이 이런 문제에 중재에 나서는데, 임대주택 월세와 관리비를 받아가는 LH는 ‘입주민끼리 해결할 문제’라고 책임을 돌린다는 게 이들 입주민의 불만이다.
실제 LH 측은 쓰레기 문제가 불거진 지 이렇다 할 추가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LH 관계자는 “작년 11월쯤 해당 임대주택의 쓰레기 문제는 전산상 모두 처리된 것으로 나온다”며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임대주택 관리 업체의 교체나 인원 증원 등도 없었다.
LH 측은 지난해 11월에도 “위탁업체 한곳이 성북구 전체 임대주택을 관리하다 보니 처리가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 그때나 이때나 여전히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지 않고 있다.
LH 관계자는 “관리업체는 해마다 재계약을 진행한다”며 “민원 등이 접수되면 재계약 거절 사유가 될 순 있지만 입주자 개인마다 느끼는 불편함의 강도가 달라 이 부분은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파트 단지에서 입주민끼리 갈등이 발생했다고 관리 사무소나 건설사가 책임을 지진 않는다”며 ”임대주택 문제도 정책을 만들고 주거를 제공한 곳이 입주민간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 게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쓰레기 문제 등의 해결에 나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입주자 매뉴얼’과 ‘커뮤니티’ 만들겠다는 정부… “강제 퇴거는 무리”
국토부와 LH는 대신 ‘입주자 표준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하고, ‘청년 커뮤니티’ 등을 만들어 입주민 간 소통을 활성화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입주민들 사이에선 임대주택에서 상습적으로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고 층간 소음을 발생시키는 입주자를 상대로 ‘강제 퇴거’ 조치까지 취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으나 정부는 난색을 표했다. 그럴 권한이 사실상 없다고 했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다른 입주자에게 피해를 끼치면 ‘계약 해지’까지 감수해야 하는 일반 임대차 계약과는 크게 대조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입주자 표준 매뉴얼 개발에 착수했으며, 상반기 중 시범적으로 ‘청년주택 코디네이터’(가칭)을 만들어 입주 청년들을 교육하고 반상회 등도 개최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라며 “그 성과에 따라 하반기에 다른 임대주택에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에 문제가 된 성북구 임대주택은 시범사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LH 관계자는 “타세대에 피해를 주는 입주민은 2년 계약 만기 시 재계약하지 않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강제 퇴거 등은 권한이 없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이라는 임대주택의 목적을 위해서도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청년가구 주거 부담 덜어주겠다’ 공약한 文 정부…“관리도 정부의 의무”
‘청년 1인 가구 등의 주거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22번째 공약이었다.
2017년 4월 문 대통령은 “4인 가구 중심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동거, 비혼, 여성 등 다양한 형태로 확대하겠다”고 청년 주거정책의 기조를 발표했다. 이에 국토부는 2018∼22년 청년주택을 27만실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다만 문 정부의 ‘청년 주거 안정’ 노선에 국토부, LH 등이 실질적으로 발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눈에 보이는 공급 확대에만 치우쳐 관리 소홀에 따른 입주민들의 불편에는 눈감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LH가 임대를 놓고 임대료, 관리비도 받으면서 제대로 관리를 안 하는 것은 사실상 ‘착복’이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공임대주택을 무리하게 너무 많이 공급하고 있어 공실이 우려된다”며 ”공급에만 치중하지 말고 이후에 관리까지 하는 게 정부의 의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