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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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위쪽 사진은 물을 주기 전 시클라멘 모습이고 아래는 물을 준 그 다음날 모습입니다

식탁에서 아침 밥을 먹고 있는데 어디서 소리가 들려왔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느냐?"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있었다. 시클라멘이 화분에서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축 늘어진 꽃대가 꺼져가는 생명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얼마 전 남대문시장에서 시클라멘 화분 하나를 샀다. 하늘을 향해 꽃대를 세운 채 연분홍 꽃을 피운 시클라멘의 기품에 마음이 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후 일주일 동안 꽃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서 물조차 주지 않았다. 나의 게으름이 소중한 생명을 죽이고 있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억겁의 세월을 거쳐 탄생한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처께서 전생에 동굴에서 수행할 때의 일이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매가 쫓아오니 숨겨 달라고 했다. 부처는 그 비둘기를 숨겨주었다. 잠시 후 매가 와서 "혹시 비둘기를 못 봤느냐?"고 물었다. 부처는 비둘기를 잡아먹는 살생을 그만두라고 설득했다. 매는 "부처님은 비둘기의 생명만 중요하고 비둘기를 못 먹으면 굶어죽는 내 생명은 소중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부처는 매에게 비둘기를 잡아먹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고기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런 뒤 왼쪽 허벅지의 살을 베어 저울에 올리고 반대 쪽에 비둘기가 올라가게 했다. 저울이 비둘기 쪽으로 기울었다. 부처는 오른쪽 허벅지 살까지 베어 저울에 올렸다. 그런데도 비둘기 쪽으로 계속 기우는 것이었다. 부처가 직접 저울 위로 올라가자 마침내 부처와 비둘기의 무게가 균형을 이루었다. 부처는 약속대로 자신의 육신을 모두 매에게 주었다.

 

그렇다. 생명의 가치는 무게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생명이든 각자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동화작가 정채봉은 클로버 이파리를 보고 "지금 이 들녘에서 풀잎 하나라도 축을 낸다면 들의 수평이 기울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생명의 가치에 눈을 뜬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겠는가.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