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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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정부 감염 상황 축소·은폐 의심… 의료진 15명 확진 사실도 ‘쉬쉬’

“초기 대응 부실” 비판 빗발 / 中, 정보공개 투명하다지만… / ‘사람대 사람 감염’ 뒤늦게 인정 / 춘제 시작… 전면 확산단계 우려 / 감염 속도·경로도 미스터리 / 지난 주말부터 매일 백여명 발생 / 사스처럼 박쥐서 발원 가능성 제기 / 확진 美 남성 우한시장 방문 안해

중국에서 시작된 우한 폐렴이 국경을 넘어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중국 정부의 미숙한 초기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과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 당시처럼 중국 정부가 감염 실태와 심각성을 축소 발표하고 있다는 의구심도 증폭되고 있다.

2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전염병 권위자인 홍콩대 위안궈융 교수는 “우한 폐렴이 2003년 사스 당시와 같은 전면적 확산단계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우한은 중국 내 모든 철도망이 통과하는 중부 내륙 교통요지인 데다 연인원 30억명이 이동하는 춘제 대이동이 이미 시작돼 우한 폐렴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워싱턴주의 제이 인슬리 주지사(오른쪽)가 21일(현지시간) 중국을 방문한 워싱턴의 30대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판정을 받은 뒤 시애틀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발표하는 모습. 워싱턴=AP연합뉴스

◆중국 정부 초기 대응 비판 쏟아져

사망자가 800여명에 이른 사스 대유행은 당시 중국 정부의 조직적인 은폐와 이로 인한 초기대응 미흡이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됐다. 2002년 11월 16일 중국 광둥성 포산에서 처음 발병했다. 중국 언론에 처음 보도된 것은 발병 45일 후인 2003년 1월 말이다. 그것도 현지 언론의 1단 기사에 불과했다. 이후 중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은 2003년 4월 10일이다. 발병한 지 5개월이나 지난 후였다. 당시는 이미 홍콩과 미국 등지로 퍼진 이후였고, 해외 발병사실이 잇따르는 데 침묵하는 중국 정부에 대한 압박이 고조되면서 결국 이를 인정했다.

이번 우한 폐렴에 대한 중국 정부 대응이 당시와 ‘닮은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초기 방역 실패에 정보를 은폐하려는 점 등이 비슷해서다. 중국 관영 매체는 사스와 비교하면 정보공개가 신속하고 투명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적시에 공개하지 않은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 대 사람 감염 여부에 대한 공개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31일 확진자 27명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사람 대 사람 감염 여부는 제한적이라고 밝혀 왔다. 질병 통제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우한시 보건위생위원회는 지난 3일 이후 추가 감염사례가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20일 의료진 15명이 확진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의료진 감염은 사람 대 사람 전파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중국 외 지역에서 의심환자와 확진자가 잇따르자 더는 숨기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의 리빈 부주임이 22일 베이징 국무원에서 열린 우한 폐렴 관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베이징=AP연합뉴스

초기 대응도 늦었다. 우한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의심환자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방역조치는 17일에서야 이뤄졌다. 이미 확진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중국 전역에서 의심환자가 속출하던 상황이다. 사스 사태 때처럼 초동조치를 제대로 못해 전염 확산을 방치한 셈이다.

사스 대응에 참여했던 싱가포르 전염병 전문가 피오트르 클레비키는 “공식 발표된 수치를 믿기 힘들다. 중국은 실제보다 상황을 축소해 보고한 전력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전 아시아 지역 대변인 피터 코딩리는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 확산에 대해 초기부터 거짓말을 했다”고 비판했다.

◆감염경로 미스터리?… 확산속도도 경이적

우한 폐렴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확진자가 27명 발생한 이후 열흘 정도는 40명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난 17일부터 매일 100여명씩 늘어났다. 22일 오후 기준 이미 500명에 육박했다. 홍콩대 전염병역학통제센터는 지난 17일까지 이미 중국 내 20여개 도시로 확산했고, 우한 내 감염자 1343명과 다른 도시 감염자 116명 등 중국 내 감염자만 1459명에 이른다는 추정치를 내놓기도 했다. 영국 한 연구기관도 감염자가 1723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전염병 확산은 보통 4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2단계는 인간 간 전염, 3단계는 가족과 의료진에 전염되는 확산단계, 그리고 마지막 4단계는 전면적 확산단계다. 이미 우한 폐렴은 4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감염경로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불안감을 키운다. 대부분 코로나바이러스가 비말(침방울) 전파라는 점에서 이번 우한 폐렴도 비말 전파일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특히 자연숙주는 박쥐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이를 매개하는 중간숙주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홍콩 SCMP는 중국 과학자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우한 폐렴이 사스와 같이 박쥐에서 발원했고, 전염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중국과학원 상하이파스퇴르연구소와 군사의학연구원은 전날 공개한 ‘중국과학: 생명과학’ 논문에서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와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미지의 중간숙주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사스는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로 옮겨진 뒤 이 사향고양이를 통해 다시 사람에게 전파됐다.

한편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우한 폐렴 환자로 확진판정을 받은 30대 남성의 경우 감염경로가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크리스 스피터 미 워싱턴주 보건당국 관계자는 WSJ에 “그는 감염지로 지목된 우한 지역의 그 어떤 동물이나 수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을 가지도 않았고 폐렴 증상을 보이는 사람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우한 폐렴’이 발생한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18일 의료진이 폐렴 환자들을 집중 치료하고 있는 한 병원으로 감염자를 옮기고 있다. 우한=AFP연합뉴스

◆지구촌 ‘우환’ 되나… 증시도 ‘빌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인 중국 우한 폐렴이 만리장성을 넘어 미국까지 침투하면서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 본토를 시작으로 한국, 일본, 네팔,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태국 등 동아시아 지역으로 퍼지던 바이러스가 이제 미국까지 확산했다. 각국은 저마다 위험경보 단계를 높이고 공항 검역을 강화하는 한편 백신 개발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관계자는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21일(현지시간) “우리는 미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추가 발병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경고했다. CDC는 비상운영센터 가동에 돌입하고, 첫 환자가 발생한 워싱턴주엔 역학조사팀을 급파했다. 또 우한에 대한 여행경보를 2단계로 상향하고, 여행객이 아픈 사람이나 동물과 접촉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등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17일부터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3개 공항에서 중국발 입국자에 대해 실시하던 검역 활동도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공항과 시카고 오헤어공항으로 확대된다. 미국의 첫 확진환자가 검역 대상이 아닌 워싱턴주 시애틀공항을 통해 입국한 만큼 추가 환자 발생에 대비하고 있다.

 

22일 NHK 등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21일 중국에 대해 감염증위험정보 레벨 1을 발령하고 주의를 촉구했다. 이 정보는 전염병과 관련해 주의가 필요한 국가·지역에 발령하는 해외안전정보다. 레벨1(특별 주의 필요)-2(불필요한 출국 중지 촉구)-3(출국 중지 권고)-4(피난권고) 순으로 높아진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로 21일 열린 각료회의에서는 공항을 포함한 입국 경로에 검역수준을 강화하고, 우한을 방문한 경우 별도의 서류를 작성토록 했다.

일본의 유명 온천 관광지인 가나가와현 하코네 한 과자 상점이 문 앞에 우한 폐렴과 관련해 “바이러스가 뿌려지는 것이 싫다”며 ‘중국인종 진입상점 금지’(中國人種進入商店禁止)라는 안내문을 내걸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인도는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체온 점검 기계 설치를 현재 3개에서 7개 공항으로 늘렸다. 싱가포르는 22일부터 우한을 포함해 폐렴 증세가 있는 모든 중국발 입국자를 격리조치하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와 관련해 22일 초국가적 전염병 사태에 적용하는 국제 비상사태를 선포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긴급조치가 결정될 경우 여행·무역 제한권고도 이뤄져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 뉴욕 증시 3대 지수인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나스닥지수가 21일 사상 최고치 행진을 멈추는 등 글로벌 증시도 벌벌 떠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감염 예방을 위한 백신 개발에 착수했지만 단기간에 완성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앤서니 포시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장은 “백신개발의 초기단계에 들어갔다”며 “초기 임상 단계까지 진행하는 데 몇 개월이 걸리고 실제 사용까지는 1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김민서 기자·도쿄·워싱턴=김청중·정재영 특파원 ws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