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 10명 중 1명은 여성혐오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여성가족부, 성차별, 페미니즘 등에 대해 남녀간 인식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연구 보고서 ‘여성혐오 담론분석을 통해 본 사회적 갈등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서울시민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7%인 322명이 온라인에서 여성혐오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13.4%인 402명은 오프라인에서 여성혐오 표현을 쓴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여성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온라인의 경우 ‘상대방이 먼저 내가 속한 집단을 비난해서’(28.9%),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서’(17.4%), ‘표현의 자유’(15.2%), ‘다들 그렇게 하니까’ (13.7%) ‘재미 있어 보여서’ (10.6%)로 나타났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는 표현(91.7%),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91.2%), 외모 비하(89.5%), 일본어에서 유래한 성적 불쾌감을 초래하는 표현(88.9%) 등의 여성혐오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컸다. 반면 ‘김여사’(26.2%), ‘맘충’(43.1%), ‘김치녀’(48.8%) 등의 표현을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은 절반에 못 미쳤다.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은 남녀에 따라 차이 났다. ‘2016년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혐오와 무관하다’, ‘xx녀라 이름 붙이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있다’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남성이 각각 48.1%, 34.7%로, 20%대의 응답자만 동의한 여성과 차이를 보였다. ‘여성혐오는 실제 존재하며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에 동의하는 이들은 여성이 81.7%였던 반면 남성은 57.7%에 그쳤다.
또 남성의 51.7%, 여성의 37.2%는 성평등이나 페미니즘을 호응하는 정부가 남성들의 외면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여성가족부가 여성 정책에 예산을 지나치게 많이 쓴다는 의견에는 여성 37.2%, 남성 57.2%가 동의했다.
여성할당제도(여성 71.3%, 남성 46.8%), 여성우선주차장(여성 67.3%, 남성 43.6%), 남성 군복무 경력 인정(여성 69.9%, 남성 81.1%), 교육대학의 남학생 비율유지 정책(여성 53.1%, 남성 60.2%)에서도 남녀 견해가 갈렸다.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는, 페미니즘 인식 경로가 인터넷 신문기사나 댓글이라는 응답이 여성 51%, 남성 62.9%에 달했다. 정규교육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접한 비율은 여성 9.4%, 남성 8.4%에 그쳤다. “페미니즘이 인권 향상에 기여한다”에는 여성 72.1%가 동의했으나 남성은 이 비율이 45.3%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설문조사를 통해 언론이 여성과 남성의 대결 구도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 우리 사회에 여성 혐오가 실재하고, 혐오가 차별에 기인하고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다수의 시민이 공감하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이어 “10대와 20대의 성별 응답 격차가 가장 컸다”며 “성별 응답 격차가 비교적 적은 50대의 경우 남성은 10·20대보다 여성혐오에 좀더 비판적이고 여성정책에는 비교적 호의적이고, 50대 여성의 인식은 10·20대 여성에 훨씬 못 미쳤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현재의 삶에 만족할수록,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가질수록 본인이 소속되지 않은 집단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점은 설문조사의 주요 시사점”이라며 “남성이든 여성이든 특정 ‘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판단하는 많은 문제에 대해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상대방 ‘성’에 대한 원망이 먼저라는 점은 문제적”이라고 바라봤다. 이어 “(면접조사 결과) 20대 남성들의 이야기 안에서 남성은 가해자 남성과 ‘정상남성’으로, 가부장적인 40∼50대와 변화된 20대로 분리되며, 여성은 허용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와 ‘메갈 내지 워마드’, ‘개념녀’와 그렇지 않은 여성 등으로 계속 분리되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진들은 여성혐오가 ‘젠더갈등’이 아닌 젠더 격차, 성불평등으로 이야기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지역갈등, 빈부갈등이 격차·차별의 문제이고, ‘혐오’가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가하는 인권 침해로 논의되는 현실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혐오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여성·남성의 인식차는 일상 경험에 대한 해석에서 정책 평가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있었다”며 “정책의 출발점을 ‘여성가족’보다 ‘성평등’에 초점을 두고 구체적 정책명에서도 ‘여성우선주차장’을 ‘안심주차장’으로 하는 식으로 대상을 명시하기보다 가치 지향적인 정책명을 고려해야 한다”고 서울시에 조언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