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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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가문의 영광”은 옛말…지난해 5급 행시 사무관 퇴사자 ‘0명→10명’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부근 정부부처 이정표. 연합뉴스

2012년 행정고시 일반행정직에 합격한 신재민(35)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2018년 12월 유튜브에 기재부 업무에 관련된 동영상을 올려 큰 주목을 받았다. 영상엔 기재부의 한 민영기업 사장 인사 개입 의혹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그는 모교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공직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며 “나는 스타 강사가 되겠다”고 밝혔고 2018년 7월 한 온라인 강의 업체와 강사 계약을 맺었다. 대중은 그가 올린 영상 내용뿐 아니라 명문대를 졸업해 과거 이른바 ‘가문의 영광’으로 불렸던 행정고시에 합격한 젊은 사무관이 공직을 떠나 학원 강사로 뛰어든 것에 큰 관심을 가졌다. 

 

◆2019년 젊은 사무관 중도퇴직자 ‘10명’, 2010년 대비 10배 ↑...외교부가 가장 많아

 

중앙부처 행정고시(5급) 및 외교관후보자 임용(5급)으로 입부한 뒤 10년 이내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젊은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신씨처럼 공직생활에 실망하거나 더 나은 대우를 약속받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청년 사무관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26일 기자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인사혁신처로부터 입수한 ‘중앙부처 행정고시 및 외교관 후보자 임용 중도퇴사자 현황’에 의하면, 지난해 행정고시 및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으로 임용 후 10년 이내 중도 퇴사자는 총 10명이다. 2019년 5급으로 선발된 공무원이 370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젊은 사무관 37명이 임용될 때 1명은 자발적으로 공직사회를 떠났던 셈이다.

 

지난해 공직사회를 떠난 10명 중에선 외교부가 4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기획재정부 2명 △국토교통부 1명 △방위사업청 1명 △보건복지부 1명 △특허청 1명을 기록했다.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의 모습. 남정탁 기자

눈길을 끄는 부분은 5급 행정고시 및 외교관 후보자 임용자 중 10년 이내 중도퇴사자는 2010년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그 뒤 매년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들 중도퇴사자는 2010년 0명을 기록한 뒤 △2011년 1명 △2012년 0명 △2013년 1명 △2014년 1명 △2015년 2명 △2016년 3명 △2017년 4명 △2018년 5명 △2019년 10명을 기록했다. 이들은 주로 증권사 등 민간기업에 취업하거나 법학전문대학원, 해외 명문대 등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퇴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내부 조직에 불만을 갖는 젊은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과도한 업무 강도 대비 낮은 급여·보상과 인사적체,  ‘탑다운’(Top-Down) 방식의 업무방식 등을 문제 삼았다. 서울 지역 중앙부처 공무원 A(34)씨는 이날 “윗선의 지시란 이유로 특정 시기까지 일을 끝낼 수 없음에도 가능하다는 사실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안을 작성하기도 한다”며 “주도적으로 정책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 보니 만족감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시에 근무하는 또 다른 중앙부처 공무원 B(32)씨도 “밤새 야근하고 주말에 근무해 성과를 내도 보상이 적다”고 말했다. 공무원을 포함해 젊은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도 비슷한 불만 글이 종종 올라온다. 본인을 외교부 직원으로 소개한 한 이용자 C씨는 “해외 공관 근무 중인데 대사가 신”이라며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행정고시 및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 경쟁률도 꾸준히 내려가고 있다. 이날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의 경우 370명 선발에 1만3478명이 지원해 36.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최근 경쟁률을 보면 2016년 44.4:1→2017년 41.1:1→2018년 37.3:1→2019년 36.4:1로 줄곧 하락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 뉴시스

◆전문가 “청년들엔 ‘행정고시’도 선택지 중 하나…조직문화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공직문화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의 가치관 차이가 이 같은 경향을 일으킨다면서 공직사회도 조직문화 개선을 통해 젊고 유능한 사무관들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호균 전남대학교 교수(행정학과)는 “현재 공직사회는 수직적 상의하달적이고 탑다운식 문화가 있다”며 “1980년∼200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특징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조직의 상사나 부하 눈치를 안보기 때문에 이들의 사고, 신념 혹은 가치관이 공직문화와 충돌이 커서 (중도) 퇴직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김영미 상명대 교수(공공인재학부)도 “민간기업은 정부조직에 비해 의사결정시 유연할 뿐 아니라 성과를 낸 전문가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가 잘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정부 집단은 (이런 젊고 유능한 사무관들이) 뛰어난 전문성을 갖고 성과를 내도 예산 제약으로 인해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줄 수가 없고 (조직 안전성을 위해) 특정 개인에 성과를 몰아주며 평가를 인정해주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정부조직은 (민간기업처럼)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엔 (법·제도에 따라)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민간기업처럼 성과에 따른 보상을 원하는 젊은 사무관들과) 이해관계 충돌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합리적 틀 안에서 공직사회도 조직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정인 수원대 교수(행정학)는 “최근 공직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공직도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직업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며 “그만큼 이제 공직도 명예·권위 상징이 아닌 하나의 직업적 선택으로 인식해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직문화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체 공무원들에 대한) 교육훈련 등을 통한 다양성 존중 조직문화 형성과 자기개발 욕구가 강한 (젊은 사무관들의) 개인 특성을 고려해 현실성 있고 실용적인 학습, 발전 기회 제공 등을 더욱 강화해 이들의 선호와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영미 교수도 “지속적으로 조직 구성원과 세대를 넘어선 의사소통이 필요하고, 업무와 관련해 평가를 다면화 해 (젊은 사무관들이 원하는 성과·보상 제도를) 수용할 여지도 있다”며 “위아래 소통을 과감하게 진행해 서로 활로가 될 수 있는 문화개선을 해야 (정부부처도) 많은 성과를 낼 수 있고 조직문화도 개선된다”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