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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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환경파괴와 지속 가능한 공존… 걱정을 공유하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26) 물이 있는 바다를 지켜내는 방법 / 호주 산불 서울 100배 면적의 땅 태워 / 야생동물 5억 마리 사라지고 멸종 위기 / ‘지구 온난화 현상’ 세계적 화두로 부상 / 2019년 열린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 리투아니아의 ‘해와 바다’ 황금사자상 / 인공해변 조성 기후변화 심각성 알려 / 현실의 재현에만 그쳤던 과거의 미술 / 최근엔 현실로 들어와 경각심 일깨워 / 막연한 걱정보다 작은 실천 앞장서야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리투아니아 국가관의 야외 풍경. 자르디니 공원 안이 아닌 아르세날레 지역에 위치한 건물을 임대했음에도 황금사자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리투아니아 국가관,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La Biennale di Venezia) 제공

#호주 산불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

‘불이 이렇게 크게 날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최근 호주 산불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지난해 9월6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시작한 산불이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산발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알려진 불은 이제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호주 전역의 3분의 1에 가까운 지역을 태웠다. 우리나라 서울보다 100배 넓은 면적의 땅이라고 설명하면 그 피해 규모가 가늠된다. 야생동물 5억마리가 사라졌으며 특히 움직임이 느린 코알라는 멸종의 위기를 맞았다. 현재까지 불을 피해 10만여명이 피난길에 올랐고 3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잔인한 산불은 호주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됐다. 외부에서도 진화에 도움의 손길을 앞장서 내미는 이유다. 주변에서도 SNS 계정을 통해 자발적으로 기부 행사를 마련하는 모습이 보인다. 유명인 중에서는 영화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행보가 눈에 띈다. 본인 소유의 환경 재단을 통해 화재와 싸우는 전 세계적 조직망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호주 국적의 여배우 니콜 키드먼과 스타 크리스 헴스워스도 기부에 동참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다시 심각하게 인지하게 된 것은 지구 온난화 현상이다. 호주 내 보수 정치권과 언론은 온난화와의 인과관계를 부정한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가 인도양 쌍극화로 인한 기온 상승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1910년 이후 평균 기온이 섭씨 1도씩 오른 호주는 1월 중 낮 최고기온 48.9도를 경험했다. 이번 화재 피해자들이 ‘기후 난민’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유다.

하나의 원인만이 이렇게 대형 산불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온난화 현상만이 문제였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것이 산불이 번지는 데 영향을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또 다른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을 품은 채 우리와 함께 머물고 있다.

루시아 피트로이스티가 감독한 ‘해와 바다(마리나)’. 인공 해변 위에서 인공 휴양을 즐기고 있는 연기자들이 각자의 여유를 즐기며 함께 오페라 곡을 합창한다. 리투아니아 국가관,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La Biennale di Venezia) 제공

#‘해와 바다(마리나)’가 베니스에서 보여준 것

지난여름, 베니스에서는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이 열렸다.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 관장인 랠프 루고프(Ralph Rugoff)가 총감독을 맡았다. 총감독이 내세운 전시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난세에 사람으로 살기보다 태평기에 개로 사는 게 낫다(寧太平犬, 不做亂世人)’는 ‘가짜 중국 속담’에서 차용했다. 인터넷으로 시공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가짜뉴스마저 등장한 이상한 우리의 시대를 다뤘다.

비엔날레에 참여한 90개 국가들은 우리 시대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다. 이 가운데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경고한 작품이 있었다. 바로 리투아니아 국가관에서 선보인 ‘해와 바다(마리나)(Sun&Sea(Marina)·2019)’다.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 큐레이터인 루시아 피트로이스티(Lucia Pietroiusti)가 감독한 작품이다. 루자일 바치우케이트(Rugil? Barzd?iukait?), 바이바 그레이니트(Vaiva Grainyt?), 리나 라플리테(Lina Lapelyt?) 세 작가가 참여했다.

리투아니아는 이 작품으로 89개국을 제치고 황금사자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직접 방문하여 보고 경험한 작품은 과연 그럴 만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난간에 서서 아래층을 바라보게 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 구조와 장면은 16세기 영국의 극장 모습과 닮아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오페라 형식을 차용했다. 그렇게 아래층을 바라보면 그곳에서는 무대와 배우가 있다. 그림이나 설치가 아닌 사람들의 퍼포먼스만으로 공간을 채웠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여전히 과감한 선택이다.

고운 모래를 뿌려 인공 해변을 만들어 냈다. 해변 위에 펼쳐진 연한 색상의 수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산뜻한 느낌이 전반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이 덕이다. 그 위에 배우들은 수영복을 입고 누워서 각자의 여유를 즐긴다. 누군가는 책을 읽기도 하고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어린아이들은 모래 놀이에 흠뻑 빠져 있다. 한쪽에서는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도 보인다. 여느 휴양지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장면이다.

‘해와 바다(마리나)’의 관람객은 위층에서 아래를 내려보며 감상한다. 16세기 공연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목재 난간. 리투아니아 국가관,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La Biennale di Venezia) 제공

그리고 그 장면 속에서 노래가 울려 퍼진다.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즐기는 배우들이 하나의 소리를 낸다. 가만히 들어보면 가사는 ‘피부가 너무 타버리면 어쩌지’라는 작은 걱정부터 시작한다. 이후 지나치게 더웠던 지난 크리스마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어진 가사는 지구 기후 변화에 관한 심각성과 두려움에 다다른다.

예쁜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모습. 하지만 그 모습이 내포한 의미는 정반대다. 상충하는 구성으로 전한 메시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 작품은 기후 변화로 이 평범한 휴가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환경 파괴와 지속 가능한 공존에 관해 고민하게끔 만든다. 가사를 다 듣고 나서야 해변 위에 버려진 쓰레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 작품을 보며 지구 온난화로 사막화된 바다의 모습을 떠올렸다. 작품의 제목은 ‘해와 바다(마리나)’인데 해 설치물이 있는 것에 반해 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다는 본래 사막이었던 땅에 물이 들어서며 생겨났다. 그리고 그 바다는 다시 사막의 형태를 보이기 위한 순서를 밟는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 시간을 역행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이 있는 바다를 지켜내는 방법

국립현대미술관은 얼마 전 2020년 전시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오는 7월 이 작품을 서울관 서울박스에서 5일여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여름 더위 속에 줄 서서 봤던 전시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 기쁜 소식을 들으며 환경에 관한 나의 막연한 걱정이 그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위기는 기후 위기를 체감하기 시작한 절박함 속에 열렸다. 하지만 주원인인 탄소 배출 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영국의 어느 학자는 ‘지구온난화’라는 온화한 표현이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이제 이 상황을 ‘지구가열’로 불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미술은 과거에는 현실의 재현에 그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몇몇 작품은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를 가끔 찌른다. 놀라서 쳐다보면 무심해진 일에 경각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 작품을 떠올리며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부터 습관에 익히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본다. 텀블러를 항상 가방 속에 챙기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녀야겠다. 미래라고 생각했던 2020년이 와버렸다. 물이 없는 바다만은 현재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한들 큐레이터·국민대학교 미술관, 박물관학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