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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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0조 투입 ‘탄소 제로’ 꿈… EU, 신성장동력으로 삼는다

탄소 중립 대륙 ‘유럽 그린딜’ 프로젝트 가동 / “지금 행동 안 하면 비용 매년 커질 것” /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상쇄’ 목표 / 온난화 대응 ‘지출 아닌 투자’로 접근 / 환경·경제성장 ‘두 토끼 잡기’ 자신감 / 美·中 등 주요국 소극적 대처 국면서 / 각국 ‘녹색 연대’ 강화 리더십 발휘도 / 글로벌 기업들도 ‘탄소와의 전쟁’ / 애플, 재생에너지 6기가와트 추가 도입 / 스타벅스 “2030년 물 사용량 절반 감축”

“어떤 이들은 너무 비싸다고 말하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비용은 매년 커질 것.”

유럽연합(EU)이 내놓은 1조유로(약 1290조원) 규모의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 투자계획을 두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신임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앞에 있는 변화는 유례없는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서 더 큰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과 지역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을 세계 첫 ‘탄소 중립 대륙’으로 만들겠다고 밝힌 EU집행위는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미국과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세계 강대국들이 기후변화 대처에 미온적인 상황에서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양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세계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할 것으로 보였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하며 결국 파리기후협약마저 탈퇴했다. 중국과 인도는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아직은 자국의 경제성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여태 파리협약 비준도 못 마쳤다.

다른 국가들 역시 기후변화와 기후위기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민간 국제 기후정책 분석기관 ‘기후행동추적’(CAT)이 지난해 12월 펴낸 국제 기후변화 대응 수준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높은 등급인 ‘모범’(Role Model)에 해당하는 국가는 없었다. 조사대상국 35개국(EU도 1개 국가) 가운데 불충분보다 낮은 수준에 해당하는 곳은 EU를 포함해 브라질, 캐나다, 영국, 독일, 일본, 한국 등 27개국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은 지구상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관련 입법을 강화하고 있는 유일한 곳에 해당한다. EU는 기후변화 대응이 늦어질수록 비용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오히려 선제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유럽 그린딜 계획은 탄소 중립 경제로의 전환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되겠다는 EU의 영리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기후대응 ‘우등생’ 유럽… 미래 세대 위한 청사진 내놔

세계에서 유럽은 자타공인 기후변화 대응 ‘우등생’으로 볼 수 있다. 유럽은 교토의정서 제1차 공약기간(2008∼2012년)에 2012년 감축목표였던 1990년 대비 8% 감축을 초과 달성한 것을 시작으로 교토의정서 제2차 공약기간(2013∼2020년) 의무 달성을 위해 ‘20-20-20목표’(1990년 대비 온실가스 20% 감축·재생에너지 비율 20% 상승·에너지 효율 20% 향상) 이행 합의, 2014년 파리협약에서는 2030년 감축목표를 최고수준(〃 최소 40% )으로 설정하는 등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를 통해 EU는 1990년부터 2018년 사이 온실가스 배출을 23% 감축하는 동시에 국내총생산(GDP)은 평균 61% 증가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12월 EU 정상회의에서 EU집행위가 제시한 유럽 그린딜은 이처럼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에서 얻은 교훈과 성과의 집합체다. EU집행위는 유럽 그린딜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대규모 지출이 아닌 투자로 보고 있으며, 종전처럼 환경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유럽이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탄소 중립’은 탄소 배출량을 신재생 에너지 발전 등 탄소 감축 및 흡수 활동을 통해 상쇄해 실질적인 순배출 총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EU집행위는 1조유로의 재원을 투입할 예정이며 투자 재원의 절반은 EU 예산에서, 나머지 중 1000억유로는 개별회원국이, 3000억유로는 민간영역에서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EU집행위는 미래 세대를 위한 1조유로가 전혀 비싸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 국면을 전환할 ‘거대한 계기’를 마련하지 않으면 기후변화 대응 비용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재 대기오염·폭염·홍수 등으로 인한 사망자가 매년 수십만명에 달하며, 지금 당장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사망자 수는 급증할 것이라고 유럽의회 보고서는 전망했다.

◆“누구도 낙오돼선 안 된다”… 공정한 전환이 목표

눈에 보이지 않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자는 계획이 처음부터 순조로울 리 없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취임 공약이던 그린딜 계획은 불과 3개월 전 초안이 배포됐다.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는 즉각 반대 입장을 내놨다. 프랑스와 영국,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역시 찬성하지 않았다.

EU집행위는 회원국들을 설득하기 위해 ‘탄소 중립’ 목표에 합의하는 조건으로 원자력 발전을 회원국 자체 결정에 맡겼다. 또 녹색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지역과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한 ‘공정 전환 체제’ 기금 75억유로를 EU 예산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공정 전환 기금은 광산업의 비중이 높은 폴란드의 광산 노동자들에 새로운 경제적 자립을 돕고 탄소 감축을 시행하는 리투아니아 기업들에 지원하며, 이탈리아·스페인·루마니아 등에 환경친화적 기술에 투자하는 등에 사용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사람은 유럽 그린딜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 대응에 국제적 공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해 그린딜에는 전 세계 각국을 포섭할 계획도 담겼다. 그린딜 계획에 따르면 EU는 지구 온실가스 배출의 80%를 차지하는 G20(주요 20개국)의 책임을 촉구하는 한편 중남미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녹색연대를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외교에 있어서는 기후와 환경 이슈를 외교 중심에 둘 예정이다.

 

◆MS, 탄소저감 기술 개발 4년간 10억 달러 투자

 

글로벌 기업들도 올해 ‘탄소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기업 차원의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 마이너스(-)’ 달성을 선언했다. 협력업체를 포함해 MS가 창립한 197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배출해낸 탄소량보다 더 많은 탄소를 대기 중에서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후 혁신 펀드’를 창설하고 탄소 저감 기술 투자에 향후 4년간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WSJ는 이 같은 MS의 계획을 두고 “유명한 실리콘밸리 경쟁사들이 한 약속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라며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려는 기업 간 경쟁에서 판돈을 키웠다”고 평가했다. MS는 산림 보전을 위해 이산화탄소(CO₂)를 흡수하는 사업에 자금을 대는 등 탄소배출권 매입을 통해 2012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0’을 의미하는 ‘탄소 중립’을 달성했다. 이어 2025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사무실과 공장 등을 가동하고, 2030년까지 회사의 업무용 차량을 모두 전기화할 계획이다.

 

브래드 스미스 MS 사장은 “우리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이것(기후변화)은 중립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영역이라는 것”이라며 “따라서 우리는 더 큰 야심을 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목표 수립을 촉구하는 비영리단체 ‘시리즈’(Ceres)의 에너지·기후 부회장 수 리드는 “(MS는) 기업의 기후 대응의 맨 앞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애플은 2011년부터 지금까지 280만t에 달하는 탄소를 대기권에서 제거했다고 밝히면서 2020년까지 자체 공급망에 6기가와트 규모의 재생에너지를 추가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도 2020년까지 소비자 제품 배송으로 인한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고 자사 제품에 재활용 소재를 도입할 계획이다. 알파벳은 2018년에 탄소 배출량을 370만t에서 75만t까지 감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매년 약 100억개의 제품을 배송하는 아마존은 204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CEO)는 “2030년까지 청정 에너지만을 사용하겠다”며 “2040년까지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을 통해 배송용 전기밴 10만대를 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커피 체인 스타벅스는 오는 2030년까지 탄소 발생과 물 사용량, 쓰레기를 각각 절반가량 줄이겠다는 내용의 ‘자원 친화적 미래를 위한 약속’을 최근 발표했다. 이를 위해 샌드위치에 식물성 고기를 넣는 등 친환경 메뉴를 늘리고 재활용 용기를 사용하며 커피 원두 재배 농가의 사막화 방지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세계자연기금(WWF)의 실라 보니니는 “우리가 보고 싶었던 기업의 리더십”이라고 호평했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도 기후변화 대응을 새해 화두로 꼽았다. 래리 핑크 CEO는 연례 서한에서 “환경 지속성을 투자 결정의 핵심 목표로 삼아 석탄 생산기업 등 환경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높은 위험이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에서 발을 뺄 것”이라고 선언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