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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 “노동계 싫겠지만 시대적 상황은 임금체계 개편 피할 수 없어” [세계초대석]

물가는 제로베이스, 성장률은 2%대 시대 / 높은 임금 주는 호봉제 지속하기 어려워 / 고정급 성격 수당, 판결 통해 통상임금화 / 노동계, 이제 합리적 임금체계 제시해야 / 노사정, 어렵게 탄력근로 기간 확대 합의 / 탄력근로제 입법 땐 ‘노동시간’ 많이 해결 / 새 국회 구성 후 간곡하게 입법 부탁 계획 / ‘위험 외주화’ 등 산업안전 차분하게 논의
대통령 직속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문성현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해 노사관계의 향방을 결정할 4대 핵심 의제로 임금·고용·노동시간·산업안전을 꼽고, 의제 각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노동계에 말하고 싶은 점은, 임금체계 논의가 거북하고 싫겠지만 시대적 상황을 놓고 보면 피해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문성현 위원장은 최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새해 노사정 갈등의 뇌관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임금은 노측 동의 없이 합의가 불가능하다. 사측도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라며 “이것이 2020년 노사정 이견을 조율해야 하는 위원장으로서 말하는 핵심 이슈”라고 덧붙였다.

임금체계 논의는 기존 연공급 중심의 호봉제로는 저성장·고령화 시대에 대비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신입사원과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 격차가 3.3배다. 더는 기업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내세우며 직무급제 도입을 약속했지만, 고연봉·고연령층 조합원 비중이 높은 대형 노조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4일 경사노위와 노동계에 따르면 은행권 직무급제 도입을 논의하는 경사노위 산하 금융산업위원회는 오는 18일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지만 정부 측 인사인 공익위원들이 권고안 작성을 꺼릴 정도로 노사 이견이 큰 상황이다.

 

문 위원장은 “한국이 더는 초장시간 국가가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노동시간이 길었을 땐 잔업수당이 기업에 큰 부담이 됐지만,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는 지금은 이런 우려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 근로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1993시간으로 사상 처음 2000시간 아래로 줄었다. 문 위원장은 “2000시간을 1년 52주로 나누면 한 주에 40시간이 채 안 된다”며 “통계적으로 봐도 초과근무가 1주에 5∼6시간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위원장은 2018년 11월 경사노위 출범 후 지난 1년3개월을 “오랫동안 밀렸던 숙제를 한 기간”이라고 표현했다. 그간 사회적 대화에 임하는 한국 노사의 자세가 미성숙하다고 수차례 지적했던 그는 “(경사노위를 통해) 노사가 ‘내 것만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서로의 입장을 확인했으니, 올해부턴 사회적 대화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했다. 문 위원장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을 향해 “정부가 내 파트너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에겐 “경사노위 밖에서 책임 있는 논의가 가능하겠느냐”고 협상 태도를 문제 삼았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문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올해도 노사정 갈등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분이 새해 노동계 지각변동을 얘기하면서 민노총이 제1노총에 올라선 것, 한노총이 선거를 통해 집행부가 바뀐 것을 주요 변수로 꼽는다.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노사관계에서의 4대 핵심 의제다. 임금, 고용, 노동시간, 산업안전 등이다.”

―하나씩 차근차근 얘기해보자.

“가장 중요한 건 임금이다. 임금 인상보단 임금체계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다. 이미 물가는 제로베이스다. 성장률은 2%대다. 고령화 시대를 맞았고, 정년연장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높은 임금을 주는 호봉제는 지속하기 어렵다. 현장에선 정년연장과 호봉제가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가장 큰 숙제다. ”

―임금체계 논의가 어떻게 흘러갈 거라고 보는가.

“노동계에 말하고 싶은 건, 노동계로선 거북하고 싫겠지만 시대적 상황을 놓고 보면 임금체계 개편은 피해갈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더는 임금체계가 복잡해지면 안 된다. 예전엔 기업이 잔업수당을 적게 주려고 기본급을 올렸지만 주 52시간제 시대에선 오히려 잔업수당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고정급 성격을 갖는 수당은 법원 판결로 점점 통상임금화 되고 있다. 노동계가 판단한 합리적인 임금체계를 제시할 때가 왔다. 사용자도 노동계에 무엇을 내어줄 것인지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임금 문제는 노측 동의 없인 아무것도 진행될 수 없다.”

 

―임금 격차를 둘러싼 갈등도 심각하다.

“같은 일을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100을, 중소기업 노동자가 30을 받는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가치판단 이전에,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고용이 안정되면서 당장 처우개선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정부의 임금 총액은 묶여있는데 처우개선을 어떻게 해줄 것이냐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결국 임금은 격차 해소를 위해 체계 개편 논의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고용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예전같이 고용이 느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제조업은 자동차, 조선, 철강 모두 전체적으로 물량이 줄고 있다. 특히 자동차는 미래형 자동차를 생산하는 대전환기에 놓여있어 노사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 물량이 50% 줄었다고 직원 50%를 잘라낼 수 있겠느냐. 희망퇴직을 받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결국 순환휴직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방식이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지점 아니겠는가.”

―노동시간, 산업안전에 대한 요구도 점점 커진다.

“지난해 경사노위가 어렵게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관련 노사정 합의를 해냈다. 탄력근로제만 입법돼도 노동시간 관련 문제는 많은 부분 해결할 수 있다. 국회 상황 때문에 입법이 불발됐지만, 총선 이후 새 국회가 구성되면 다시 한 번 간곡하게 입법을 부탁할 계획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사망으로 불거진 위험의 외주화, 장시간 근로, 과로사 등 산업안전 문제는 올해 노사가 차분하게 논의해봐야 한다.”

―민노총이 제1노총에 등극했다. 당장 한노총만 참여한 경사노위의 노동계 대표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사회적 대화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민노총에 묻고 싶다. 민노총이 경사노위가 싫어서 밖에서 논의하겠다고 하는데, 뭘 할 거냐고. 우리는 경사노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민노총이 사회적 대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경사노위 밖에서 논의를 이끌겠다고 하면, 응원한다. 경사노위 안에서 한노총과 경총이, 노사가 만들어내는 이 길이 결국 맞았다고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한노총에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선명성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아무래도 이달 중순은 돼야 향후 사회적 대화도 방향도 잡힐 것이다. 한노총도 새 집행부 선출 이후 내부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경사노위는 한노총, 경총, 대한상공회의소가 중심이다. 한노총과 어떤 부분을 중점에 두고 논의해나갈 것인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난 1기 경사노위는 ‘식물기구’라는 오명도 썼다. 올해는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지난 1년3개월간은 오랫동안 밀렸던 숙제를 한 기간이다. 길게 보면 외환위기 때부터 지금까지 노사 간 합리적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았다. 어떤 문제든 노사관계 속에 존재한다. 내 것만 요구할 수 없다. 노측이 원하는 게 있다면 사측 입장도 들어줘야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 이치를 깨닫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 게 1기 경사노위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올해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노사에 부탁하고 싶은 점은.

“한노총은 한노총대로, 경총은 경총대로 서로를 협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 다 정부가 내 협상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그래선 안 된다. 먼저 노사가 관계를 맺고, 정부를 그 뒤에 세워야 한다. 정부를 이용해 상대방을 압박하면 의제를 풀어갈 수 없다. 노사 모두 책임감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지난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관련 합의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월 총선은 현 정부 중간평가 의미를 지닌다.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을 평가한다면.

“경사노위 위원장의 입장을 떠나, 문재인 정부가 균형을 맞추는 숙제는 잘했다고 본다. 사측은 문재인정부의 ‘노동존중사회’는 왜 노동만 존중하냐고 하는데, 사실 이전과 달리 ‘노동도’ 존중하게 됐다고 보는 게 맞다. 노동계에 말하고 싶은 건, 정부가 노동만 존중할 순 없다. 모든 문제가 사회적 대화로 풀리는 건 아니다. 앞으로 정부의 균형추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대담=이천종 사회부장, 정리=이동수 기자 ds@segye.com

 

문 위원장은 ●1952년 경남 함양●서울대 경영학과●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 노조위원장●경남노동자협의회 의장●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민노총 전국금속연맹 위원장●민주노동당 중앙위원●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위원장●민주노동당 대표●민주통합당 18대 대선 노동위원회 부위원장●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