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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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공소장 제출 거부, 직권남용 여지 있다

국회의 제출 요구는 법적 권리 / 秋장관, 법치주의 몸소 지켜야

지난 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과 관련한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추 장관이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직권남용을 했다는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공소장은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로 전문을 제출할 경우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사건관계인의 사생활·명예 등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말로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 법적 근거로는 지난해 제정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들었다.

전삼현 숭실대교수·법학

한걸음 더 나아가 추 장관은 국회의원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곧바로 언론에 공소장 전문이 공개되는 관행은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도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첫째, 규정이 법률보다 상위규범인지 여부이다. 추 장관은 비공개 사유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국회법상 국회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권은 법률로 보장된 권리다(제128조). 이는 법무부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지는 규정보다 국회법이 상위규범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추 장관은 하위규범을 가지고 상위규범에서 인정한 권리를 부정하는 직권남용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둘째, 청와대 소속 공직자 등의 범죄혐의 사실이 사생활이나 명예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법리상 개인의 사생활과 명예는 그가 공인인지에 따라 그 보호의 정도가 달라진다. 즉 공인인 경우에는 그의 사생활과 명예는 공표된 사실이 허위가 아닌 한 보호받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추 장관이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13명을 내편 감싸기 차원에서 과도하게 보호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추 장관의 공소장 제출 거부가 정보공개법상 적법한 권한행사인지 여부이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이 공소장 제출을 요구한 경우 법률에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되어 있어야 이를 거부할 수 있다. 물론 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국가 안전 보장 등 국익을 해치는 경우나 국민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경우에는 법무부 장관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제9조). 그러나 이번 건의 경우 추 장관은 이러한 이유보다는 상기 13명 혐의자의 사생활 및 명예 보호를 이유로 거부했다는 점에서 법리적으로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넷째, 추 장관은 종래의 공소장 언론공개가 잘못된 관행이라고 단정하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즉 법무부의 최고 수장으로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비판하면서 그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 무책임한 장관이라는 비판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이번 추 장관이 행한 공소장 국회제출 거부권 행사는 법리적으로는 물론이고 사법절차상 관행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직권남용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추 장관은 현 여당의 대표 시절 당시 전 정권의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사법적 엄벌을 주도했음에도 현재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현 정권의 유사행위에 대한 사법절차 진행을 방해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명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에 딱 맞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추 장관의 공소장 제출 거부행위는 또 다른 사법농단 내지는 적폐 논란을 재연할 가능성을 높이고 말았다.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이란 국가의 법치주의를 몸소 실천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자리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공소장 거부사태와 관련해 추 장관은 스스로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본인이 사법농단의 주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디 추 장관의 현명하고 공정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전삼현 숭실대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