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기소는 당초에 무리했던 측면이 있다. 적폐청산의 ‘광기’가 냉정을 찾아가고 있다(변호사업계 관계자).” “법관들에 대한 봐주기였다. 재판부의 ‘이중잣대’ 아닌가(검찰 관계자).”
소위 ‘사법 농단’ 판결에 대한 엇갈린 시선이다. 전 정권인 박근혜정부의 ‘농단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깐깐해지고 있다. 지난달 ‘직권남용’의 구성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시발점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등 비슷한 선상에 놓인 사건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두 번째 1심 선고이자 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첫 판결이다.
같은 날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박근혜정부의 보수단체 불법 지원(화이트리스트)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의 상고심에서 강요죄에 한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또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이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던 당시 국정원장으로부터 특수활동비 5억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 최종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날 판결 중 특히 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선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법 농단’의 ‘몸통’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줄줄이 기소된 당시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공판을 앞두고 있어서다. 이번 판결은 향후 선고 공판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무죄를 선고받은 신 부장판사 등은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검찰 수사상황 등을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혐의는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차장 등의 공소사실에도 포함됐다.
재판부는 이날 “사법행정 차원에서 법관 비위와 관련한 내용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했을 뿐 부당한 조직 보호가 아니었다”면서 사법부 내부에서의 공모관계를 부정했다. 재판부는 또 “검찰이 언론을 활용해 수사정보를 적극 브리핑한 정황 등을 보면 법관들이 유출한 수사정보가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사법행정권’의 범위를 넓게 가져간 것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사건 결론에도 파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검찰 측은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 내부정보를 유출한 것이 왜 ‘공무상 비밀’이 아니냐”고 항변하며 즉각 항소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이번 판결에 대한 법조계 시선은 엇갈린다. 검찰이 무리한 기소로 법정에서 패배를 자초했다는 ‘비판론’과, 현직 판사들에 대한 판결인 만큼 재판부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었느냐는 비판이 공존한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문재인정부 초기에 엘리트 법관들이 다 비난받고 사법행정처를 악의 온상처럼 규탄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적폐청산의 실체에 대해서 이성적 판단을 찾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같이 밥 먹은 식구를 모른 체할 수 없었을 거다. 법관의 독립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재판에 이어 14일에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송인권) 심리로 임성근 부장판사의 선고 공판이 진행된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직권남용)한 혐의를 받는다.
안병수·정필재 기자 rap@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