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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천산갑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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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뚫는 갑옷’이라는 천산갑(穿山甲)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마귀를 물리치는 신비로운 동물로 여겨진다. 수년 전까지 골동품시장에서 이 동물의 비늘이나 발톱으로 만든 장식품과 부적, 빗 등이 2000위안(약 34만원)에 거래됐다고 한다. 드라마·영화에서도 천산갑 부적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천산갑은 비늘 형태의 등 껍질을 지닌 희귀포유류로 3.5m까지 땅굴을 팔 수 있다. 긴 혀로 주로 개미나 흰개미를 핥아 먹으며 위협을 느끼면 몸을 동그랗게 말아 자신을 보호한다.

한약재나 고급식재료로도 인기가 많다.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천산갑 비늘과 고기가 콩팥질환이나 천식, 암, 류머티즘 치료에 효과가 있고 정력에도 좋다는 속설이 퍼져 있다. 물론 고기에 약효가 있다는 건 미신이고, 비늘도 사람의 손톱, 발톱과 같은 성분인 각질 단백질 ‘케라틴’이어서 효능이 없다고 한다.

천산갑은 세계에서 밀매가 가장 왕성한 동물로 꼽힌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은 2014년 천산갑 야생개체수가 21년 만에 기존의 20% 이하로 급감하자 천산갑 8종 전부를 ‘취약종’과 ‘멸종위기종’, ‘심각한 위기종’으로 지정했다. 2016년 9월 100여개 국가가 천산갑거래를 금지하는 조약을 체결했지만 소용이 없다. 야생정의위원회(WJC)에 따르면 2016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압수된 밀수품 비늘이 206t에 달했다. 지난해 2월에는 말레이시아령 보르네오섬에서 30t 상당의 천산갑 사체가 적발되기도 했다.

얼마 전 중국 화난 농업대 연구진은 코로나19의 중간숙주로 천산갑을 지목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말 코로나19를 마귀라며 부르며 전쟁을 선포했다. ‘악의 기운을 물리친다’는 천산갑이 마귀의 전령으로 둔갑한 셈이다. 그저 겁 많은 귀여운 동물일 뿐인데 불법밀매도 모자라 코로나19의 숙주라니. 무차별적인 도살에 화가 난 동물의 역습이 시작된 걸까. 밑도 끝도 없는 인간의 탐욕과 미신에 소름이 돋는다. 오늘은 국제동물보호단체가 제정한 ‘세계 천산갑의 날’이지만 코로나19 공포는 가실 줄 모른다. 이래저래 뒤숭숭한 하루를 보내야 할 듯하다.

주춘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