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품(‘플란다스의 개’)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아 너무 기뻐요. 제발 보지 마세요!”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 등 4관왕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의 말이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지역 관객과 대화하던 도중이었다.
그곳에선 ‘봉준호: 경계를 넘어’라는 제목의 특별전이 개최돼 봉 감독이 그동안 만든 영화를 상영했다. 오스카 시상식 직후 열린 봉 감독과 관객들의 대화는 미국의 유명 영화평론가 스콧 펀다스가 사회를 맡아 진행했으며, 입장권이 사전에 매진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기생충’은 물론 ‘마더’, ‘옥자’, ‘설국열차’ 등 봉 감독의 대표작들이 미국 관객들한테 선을 보였으나 그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는 프로그램에서 빠졌다. 진행자 스콧 펀다스가 ‘플란다스의 개’를 소개하려 하자 봉 감독은 “그 작품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아 너무 기쁘다”며 “제발 보지 말라”고 외쳐 객석의 폭소를 자아냈다.
봉 감독은 왜 그랬을까. 그가 2000년 장편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며 내놓은 ‘플란다스의 개’는 이성재, 배두나, 변희봉 등 유명 배우가 출연했지만 서울 시내에서 약 5만7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영화계 인사들은 “그(봉 감독)에게는 아픈 역사일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흥행 면에선 참패했으나 평단의 반응마저 차가웠던 것은 아니다. 언론과 비평계에서 극찬을 받고도 되레 관객에겐 철저하게 외면받은 영화들을 뜻하는 일명 ‘저주받은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감독), ‘사랑니’(정지우 감독),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감독) 등이 봉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와 더불어 저주받은 걸작으로 통한다.
한편 ‘플란다스의 개’와 인기 배우 안내상 간의 악연도 새삼 눈길을 끈다. 안내상은 봉 감독과 연세대 동문으로 신학과 84학번인 안내상이 봉 감독(사회학과 88학번)보다 선배다.
안내상은 2013년 한 토크쇼에 출연해 “봉 감독 입봉작이 ‘플란다스의 개’인데 그때 연극하며 살기가 힘들었다”며 “후배인 봉 감독이 영화를 한다길래 전화를 해 ‘나 할 거 없느냐’고 물었더니 봉 감독이 난처해 하면서 ‘없다’고 하더라. 전화를 끊는데 갑자기 서러웠다”고 털어놓았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