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다섯번째 시즌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뮤지컬 ‘레베카’는 공연이 끝나기 전 꼭 한번 볼 만한 작품이다. 틈 없는 줄거리에 훌륭한 무대가 뮤지컬의 기본인 좋은 노래, 열연과 함께 어우러진다.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을 만든 미하엘 쿤체(대본)·실베스터 르베이(작곡) 콤비가 독일어로 만들어 2006년 오스트리아에서 초연한 작품. 이를 2013년 EMK뮤지컬컴퍼니가 음악과 대본은 그대로 살리되 세트와 의상, 안무, 조명 등은 재창작하는 ‘논-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국내 초연했다. 미하일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로부터 “한국 무대가 세계 최고”라는 극찬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한 후 순조롭게 네 번의 국내 공연에서 6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지난해 말 다섯 번째 공연이 시작됐다.
영국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을 스릴러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아카데미상까지 받았던 이 작품 배경은 영국 남서부 콘월 지방의 아름다운 바닷가 위에 세워진 대저택 맨덜리. 이곳에서 부호 막심 드윈터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여주인공 ‘나(I)’의 시점에서 관객은 사교계 여왕이었던 막심의 전 부인 레베카의 일 년 전 갑작스러운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게 된다. 사건 전개는 스릴러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그러나 대저택 곳곳에 배어 있는 레베카의 환영과 레베카를 숭배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에 맞서 싸우며 대저택 안주인으로 자리 잡고 막심과 사랑을 지켜나가는 ‘나’를 관객이 응원하게 하는 성장물이기도 하다.
완성도 높은 뮤지컬로서 ‘레베카’의 최대 미덕은 빼어난 음악에 올려진 등장 인물의 뚜렷한 캐릭터다. 댄버스 부인, ‘나’, 막심은 물론 주요한 조연 모두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노래를 선보인다. 역시 주제곡으로는 댄버스 부인이 이미 죽은 전 주인 혼령을 소환하듯 주술처럼 부르는 ‘레베카’가 객석을 압도한다. ‘나’가 무대를 여닫으며 부르는 ‘어젯밤 꿈속 맨덜리’나 ‘행복을 병 속에 담는 법’ 역시 시련을 굳은 의지로 이겨내고 사랑과 행복을 지켜내는 선한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레베카’의 또 다른 자랑은 화려한 무대다. 유럽 고급 휴양지 몬테카를로 그랑호텔에서 시작되는 무대는 맨덜리 저택 내부 곳곳과 바닷가 풍경으로 이어지다가 결말에선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는 장관을 만들어낸다. 댄버스 부인과 ‘나’의 노래 대결이 벌어지는 절벽가 발코니 무대도 강렬한 장면이다. 작품 의뢰가 줄 잇는 정승호 무대디자이너의 대표작으로 꼽힐 만하다.
‘레베카’의 다섯번째 시즌은 막심 역에 류정한, 엄기준, 카이, 신성록, 댄버스 부인 역에 신영숙, 옥주현, 장은아, 알리, ‘나’ 역에 박지연, 이지혜, 민경아 등 이전 시즌 출연자와 신규 캐스팅이 골고루 섞여 있다. 지난 14일 공연에선 ‘레베카’ 이번 시즌이 처음 출연인 카이, 알리, 박지연은 물론 레베카의 음흉한 사촌 잭 파벨 역의 이창민까지 나란히 한 무대에 올라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 뮤지컬 출연은 2015년 ‘투란도트’ 이후 두 번째인 알리는 자신의 특색있는 음색과 가창력으로 새로운 댄버스 부인의 출현을 알렸다. 지난해 ‘시라노’ 여주인공 록산을 맡아 호평받은 뮤지컬계 신성 박지연 역시 이날 무대에서 안정된 연기력과 가창력으로 상승세를 확인시켜줬다.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3월 15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