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모는 꼭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부모님도 너무 아쉬워하세요. 제가 외아들이라 자식 졸업식 오실 기회도 이제 없으시거든요.”
16일 대학 졸업을 앞둔 이모(26)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학위수여식(졸업식)이 취소되자 이같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졸업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서운함을 감추긴 어려운 모습이다. 연세대 졸업생 박모(28)씨는 “8년 만에 졸업하는 입장에서 아쉬움이 크다”며 “부모님께서도 누구보다 코로나19를 조심하시지만 이번 졸업식만큼은 오신다고 일찍부터 준비를 하셨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코로나19 여파가 졸업시즌을 맞은 대학가를 덮쳤다. 대학가에 따르면 전국에서 이날까지 졸업식을 취소·연기하거나 간소화한 대학은 120여곳에 달한다. 지난 12일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행사·축제·시험 등 개최 지침’을 통해 “집단행사를 전면 연기하거나 취소할 필요성은 낮다”고 밝히고 교육부가 다음날 해당 지침을 준수하라고 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대학에서 졸업식은 ‘물 건너 갔다는 분위기’다. 특히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이후로 “대학 졸업식·입학식·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등 집단행사는 가급적 연기하거나 철회하라”고 대학에 여러 차례 알린 바 있어 정부 입장이 ‘왔다갔다’하며 혼선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아예 졸업을 연기하는 학생들도 있다. 졸업생 지모(27)씨는 “졸업 시기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오랜 대학생활 끝에 찾아온 일생에 한 번뿐일 졸업식을 취소하기는 싫었다”며 “그동안 대학생활을 지지해준 가족들과의 마무리 시간이자, 오랜만에 과 친구들이 모여 근황을 나누며 축하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졸업생 딸을 둔 오모(59)씨는 “딸 졸업식에 가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당황스럽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 알지만 딸이 대학 졸업식 사진도 못 남긴다는 상황은 나중에도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졸업 연기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정부 입장은 오락가락했지만, 대학들은 나름의 절충안을 내놓기도 했다. 졸업식을 여름에 통합해 진행하거나 졸업사진 촬영을 위해 학위복 대여만 하는 식이다. 이화여대는 “졸업식이 대학뿐 아니라 개인과 그 가족들에게도 중요한 행사 중 하나임을 잘 알기에 거듭된 대책회의와 논의 끝에 다음과 같이 학위복 배부를 결정했다”고 밝혔고, 한양대는 “감염병 위기가 진정된 후 일정 기간 개별적인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학위복을 대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하계 졸업식 통합 여부나 학위복 대여 일정이 정확하게 결정되지 않은 대학이 많아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대학 졸업생 최윤진(24)씨는 “처음엔 학교가 전면 취소를 한다고 했다가 하계에 통합하니 그때 참석하라고 했다”며 “이번에 학위복만 빌려서 사진을 찍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대학원을 졸업하는 조모(27)씨는 “행사 취소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이지만 졸업식 연기나 추후 일정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아 황당하다”고 말했다.
서울예대 졸업생 박모(24)씨는 “예대 특성상 여름 졸업식이 없어 아예 졸업식이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하계로 연기되거나 학위복을 빌려준다고 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학부모 신영옥(52)씨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가족끼리 학위복 입고 꽃다발 들고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며 “봄쯤이면 코로나19도 잠잠해질 것이라 생각해 나들이 겸 캠퍼스에서 사진을 찍으려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