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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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일각에서 ‘비례정당’ 창당론 고개…군소정당 “개혁 무력화” 비판

윤건영·손혜원 등 여권에서 ‘비례정당’ 발언

준연동형 비례대표 제도가 처음 실시되는 4·15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이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든 것처럼,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 고려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여권 일각에서 나온다.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구로을에 도전하는 ‘문재인의 남자’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은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기본적으로 최근 보수 야당의 행태는 지난 연말 연초에 있었던 선거법 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그런 꼼수 정치를 하고 있다”며 “그 폐해에 대한 대응을 하자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꼼수는 결국 원칙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이번 선거에서는 민심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는 걱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연합뉴스

 

윤 전 실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보수가 꼼수 정당을 만드는데 진보는 가만히 앉아 당할 거냐”며 ‘극단의 선택’까지도 당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라디오에서 “비상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당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판단해야 된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윤 전 실장은 “민주당만의 문제라기보다 진보 블록 전체의 문제로 생각한다”며 “같이 어떻게 원칙을 견지하면서 보수 야당의 꼼수 정치를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출신인 무소속 손혜원 의원도 이날 유튜브 ‘손혜원TV’에서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아닌 민주시민들을 위한, 시민이 뽑는 비례정당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제가 직접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니 관련된 분들과 함께 의견을 모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려 한다”고 대응할 뜻을 넌지시 드러냈다.

 

이처럼 여권에서 잇따라 비례 정당 관련 발언이 나오는 건 미래통합당과 달리 민주당만 비례 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이번 총선에서 15석 이상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과반 확보는 물론, 자칫 1당까지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로 보인다.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한 참석자가 미래한국당이 정당 득표율 27%를 얻는다고 가정했을 때, 각 정당의 의석수 전망 시뮬레이션 자료를 휴대전화로 확인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최고위원회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심각하다”며 “이 상태로 가면 비례에서만 20석 차이를 안고 들어가는 상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비례 정당 창당 등) 외곽 조직을 통한 대응책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뭐 아직 걱정만 있다”고 조심스레 답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같은 당내 비례 정당 창당 필요성 주장에 대해 개인의 의견이라고 선을 그으며, 비례 위성정당 창당은 검토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윤 전 실장이나 손 의원은 자유롭게 개인 의견을 말한 것”이라며 “우리 당은 비례 위성정당이 ‘꼼수’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으며 여전히 창당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이던 지난 5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개최된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 이야기가 고개를 드는 데 대해, 함께 선거법 개정 공조에 나섰던 군소 야당들은 “선거제 개혁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등 보수통합 정당)의 불법위장 사조직인 미래한국당의 창당이 실제로 단행되자,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 똑같은 비례 위성정당 창당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 전 실장과 손 의원의 발언 등을 놓고 “이전에도 민주당 지지자 일각에서 위성정당 창당에 대한 이야기가 불거진 바 있다”며 “그러나 당에서는 당과 관계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었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여권 인사 사이에서 창당 계획이 거론되는 만큼 민주당의 명확한 입장을 촉구했다. 그는 “비례 위성정당을 이용해 선거법 개정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것은 민주주의 파괴행위일 뿐”이라며 “민주당은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퇴출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원칙과 명분은 지키길 바란다”고도 했다. 특히 제1야당의 정치적 꼼수에 집권 여당이 ‘농락’ 당해서는 안 된다며, 대의와 원칙 등을 추구했던 초심을 따라 현명하게 행동하라고 강조했다.

 

김정현 대안신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여권 인사들이 앞다퉈 비례 위성정당 창당을 검토해야 한다고 나서는 것은 집권여당이 스스로 정치개혁의 대의를 포기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협치로 이뤄낸 선거제 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들 소지가 크다”며 “엊그제까지 미래한국당을 한 목소리로 비판하던 민주당 지도부 입장과 배치되고, 민주당 지도부는 위성정당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현 평화당 수석대변인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비례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한국당을 뺀 여야가) ‘선거법을 무력화시키고 정치개혁을 침탈하는 행위’라고 같이 비판했는데 스스로 그것을 만드는 것은 개혁정부로서 선택지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