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북쪽 끝으로 올라가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분관에 해당하는 클로이스터스(The Cloisters)가 있다. 포트타이런 공원의 한복판에 위치한 이곳은 복잡하고 시끄러운 뉴욕 시민들이 중세 유럽의 수도원 같은 고요함으로 탈출하는 보석과도 같은 장소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 같은”이라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미국의 갑부 존 D 록펠러의 아들이 건축가 찰스 콜린스와 힘을 합쳐 프랑스 곳곳에 방치되어 있던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의 수도원 다섯 채를 통째로 뜯어다 옮겨 재조립해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 같아서는 프랑스 같은 문화와 역사의 나라가 그런 일을 허용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그게 가능했다. 특히 프랑스가 혁명을 거치면서 교회(구교, 가톨릭)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한 것도 문화재 반출에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클로이스터스 뮤지엄 내에는 오귀스트 로댕의 제자였던 조지 그레이 버나드가 수집한 중세 미술작품들이 가득하다. (이 역시 록펠러 주니어가 콜렉션을 통째로 사들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듯한 조용한 전시실들을 돌아다니다가 반드시 거치게 되는 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유니콘 태피스트리 룸’이다. 태피스트리는 중세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직물 공예로, 쉽게 말하면 온갖 그림과 문양이 든 거대한 양탄자를 걸개그림처럼 벽에 거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전시실에 걸려 있는 태피스트리 일곱 점은 사실 하나의 작품이다. 흔히 ‘유니콘 사냥’이라고 알려진 이 작품은 사람들이 유니콘을 찾아나서서 사냥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보여준다. 물론 유니콘이라는 것 자체가 상상 속 동물이기 때문에 태피스트리 속 이야기는 허구다.
그런데 중세의 방을 재현해놓은 이 전시실의 한구석에는 유니콘의 뿔로 보이는 물건이 보란 듯 전시되어 있다. 사실 이 뿔은 바다에 사는 일각고래(narwhal)의 뿔이다. 일각고래는 지금도 희귀한 동물이지만, 중세 유럽인들에게는 구경하기 힘든 동물이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잡은 이 고래의 뿔은 왕이나 귀족들에게 비싼 값에 팔려 유럽을 돌아다녔고, 이 바다동물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유니콘이 전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동물이라는 증거 아닌 증거로 사용되었다.
특히 유니콘을 사냥한 이야기를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들려주는 태피스트리들과 함께 이 뿔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유니콘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첫째 그들은 유니콘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고, 둘째 그들은 일각고래라는 동물이 존재하는 줄 몰랐고, 셋째 그들의 두 눈 앞에 “증거물”이 있기 때문이다. 개를 비롯한 많은 동물이 특정한 존재의 증거를 후각에 의지한다면, 인간은 시각에 의존한다. 많은 법학자가 ‘목격자’의 진술이 부정확할 수 있음을 경고하지만 법정에서는 여전히 큰 위력을 갖는 이유도 반드시 눈으로 확인해야 하고, 눈으로 본 것은 믿는 인간의 성향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인류 역사에서 그림은 특정한 일이 일어났다는 증거로 사용되는 일이 많았다. 가령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말이나 텍스트로만 전달될 때보다 그림이나 조각으로 성당에 전시되었을 때 사람들의 신앙을 돈독하게 해주었고, 굳이 김일성의 항일전투를 그린 선전 포스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많은 ‘역사화’가 그 그림을 주문한 사람들이 원하는, 그들에게 유리한 스토리를 들려주고 있다.
클로이스터스에 전시된 유니콘 태피스트리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유명한 그림 중에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는 것이 있다. 15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거장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이 그림은 당시 네덜란드 회화 특유의 디테일이 가득해서 보는 사람이 마치 그림 속 방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그림 속 가구와 거울, 신발과 강아지의 사실적인 묘사가 보는 사람에게 주는 인상은 가공된 이미지가 넘쳐나는 21세기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들 만큼 강력했다. 사람들은 ‘화가가 저 그림이 그려진 저 방에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자세한 내용을 그림으로 남겼겠느냐’는 (지금 생각하면) 순진한 생각을 하게 된다.
화가인 얀 반 에이크는 그것도 모자라 서 있는 부부 뒤로 보이는 벽에 ‘얀 반 에이크 이곳에 있었다. 1434년’이라는 문구까지 남겨놓았다. 20세기 초에 활동한 도상학자이자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이 그림이 이 커플의 결혼 사실을 증명하는 법적인 문서로서 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화가가 그림 속 벽에 적어둔 문구는 물론이고, 그 문구 아래에 있는 둥근 볼록거울 속에는 이 부부 외에 그 방에 있었던 두 명이 더 등장한다. 한 사람은 화가 자신인데 다른 한 사람은 누구이고, 왜 굳이 화가가 아닌 사람이 같이 등장했을까? 파노프스키는 당시 법정에서 목격자의 증언이 객관적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의 목격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게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걸 우리가 반드시 믿을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그림 속의 내용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화가, 혹은 화가에게 돈을 지불하는 후원자는 얼마든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내용을 그림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19세기 초에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정치에 관여하여 인기를 끌면서 급기야 1804년,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하게 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대관식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당대 최고의 신고전주의 화가 다비드에게 작품을 맡겼다.
하지만 큰 행사가 그렇듯, 대관식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나폴레옹이 형제들과 다툼을 벌인 것에 화가 나 있었고, 나폴레옹이 로마로 유배 보낸 동생 루시앙을 만나러 떠났기 때문에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어머니뿐 아니라, 역시 참석하지 않았던 형 조제프까지 그림에 넣어서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옛날 사람들처럼 시각적 조작에 쉽게 속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포토샵으로 얼마든지 없던 장면을 사진 속에 넣을 수 있고, 사진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정말로 속지 않을까? 2016년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미항공우주국(NASA)이 두테르테를 우리 은하계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선정했다”는 농담을 만들어낸 뒤 그 내용을 담은 가짜 보도사진에 나사의 로고를 삽입해서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누가 보기에도 가짜뉴스인 게 분명해 보이지만 많은 필리핀 사람은 정말로 나사가 그런 발표를 했다고 믿었다.
그 사람들이 계몽이 덜 되어서 그렇게 믿었을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는 정교한 조작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믿고 있거나, 믿고 싶어하는 것에 확신을 주는 가짜 정보라는 것이다. 유니콘 태피스트리 전시실에 놓인 일각고래의 뿔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