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보내는 것은 아닌지 아이가 불쌍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노부모에게 2주나 아이를 맡길 수도 없고…”
어린이집의 휴원 조치에도 3살짜리 딸을 긴급보육에 맡긴 김모(36)씨는 25일 아이를 등원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의 딸아이가 다니는 서울 강북구의 한 어린이집은 지난 24일부터 2주간 휴업에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휴업 결정에 맞벌이를 하는 김씨는 당혹스러웠다. 김씨는 부모가 서울에 있지만 일흔 가까이에 몸이 성치 않은 이들에게 신세를 질 수 없어, 결국 어린이집에서 운영하는 긴급보육을 이용하기로 했다. 김씨는 “긴급보육을 보내긴 하지만 요즘 같은 시국에 어린이집에도 눈치가 보인다”고 하소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가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개학 연기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휴원을 결정하는 어린이집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긴급보육을 보내야 하는 김씨처럼 자녀와 어린이집에 대한 미안함과 직장에 출근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고민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맞벌이 부부 등 자녀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맞벌이 부부인 강모(39)씨도 어린이집이 휴업조치에 들어가지 않을지 매일 노심초사 하고 있다. 그의 4살 아이가 다니는 일산의 한 어린이집은 이달 초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 환자로 인해 일주일간 휴업을 했었다. 강씨는 “당시 장모님이 지방에서 올라오셔 아이를 돌봐줬다”면서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집 안에만 가둬두는 게 아이나 부모 모두에게 고역이었다”고 말했다.
인터넷 맘카페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의 휴업 결정으로 돌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4살과 6살 아이를 둔 한 학부모는 “회사 사정상 휴가를 낼 수 없었다”며 “남편 혼자 연차를 써서 6살 아이를 돌보고 있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른 학부모는 “(백화점) 문화센터 수업도 3월까지 폐강됐고, 키즈카페도 문을 닫고 있다”며 “기약 없이 집에서만 아이를 돌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걱정했다.
정부가 개학연기와 함께 ‘돌봄 서비스’를 강화했지만 이에 대한 보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맞벌이를 하고 있다는 청원자는 “돌봄교실에 아이나 학생이 몰리면 감염 우려는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며 “부모 중 한 사람이 의무적으로 휴가를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고용노동부는 자녀의 가정돌봄이 필요한 노동자에 연차 휴가와 최대 10일의 가족돌봄휴가(무급)를 활용하도록 권장했지만, 의무가 아닌 탓에 현실적으로 이를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돌봄교실 운영을 담당하는 돌봄전담사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에서 ‘집단돌봄’을 중단하거나 강화된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돌봄전담사들이 속한 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이날 서울 중구 민노총 교육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획진자 발생지에서는 집단돌봄도 중단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면서 “돌봄중단을 포함한 근본적 안전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집단돌봄이 불가피하다면 위기경보 심각 단계에 맞는 강화된 안전대책을 학교구성원 모두의 책임으로 준비해야 한다”면서 “돌봄전담사 등 교육공무직에 돌봄과 아이들 안전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하는 운영방식은 안전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본부는 또 “교육부가 안전조치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보기엔 아이들을 지켜낼 수준이 못 된다”면서 “교육당국은 보건인력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을 동원한 특별 안전대책을 강구하고, 위험상황을 책임지는 인력에는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선 학교의 개학이 연기됨에 따라 ‘첫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인 전국연합학력평가도 일주일 늦게 치러진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다른 교육청 의견수렴을 거쳐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원래 예정(3월 12일)보다 일주일 늦은 3월 19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