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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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나오기 싫으냐"…재택근무 하라더니 ‘딴소리’ [뉴스+]

직장인 ‘보여주기식 지침’ 불만 / 상사 “그렇게 회사 나오기 싫으냐” / 직원 “확진자 나와도 출근시킬 듯” / 실태조사 결과 30%만 재택근무 / 전문가 “정부, 명확한 지침 내려야”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도 회사에 나오기 싫다는 이야기야?”

 

한 금융사 직원 A(39)씨는 얼마 전 직장 상사에게 재택근무 신청 얘길 꺼냈다가 핀잔만 들었다. 회사에서 자율적으로 재택근무를 신청하라는 공지를 본 뒤 꺼낸 이야기였지만 주변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A씨는 “여러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확대하고 있는 분위기에, 맞벌이에 어린이집 휴원으로 아이를 맡기기도 곤란한 상황이어서 집사람과 고민 끝에 결정하고 말을 꺼냈다”며 “자율 재택근무라고 지침을 내놓았지만 실상은 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고 푸념했다. 그는 “이런 배경 때문인지 1000명이 넘는 직원 중에 30명 남짓만 재택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회사에서는 확진자가 나와도 출근을 시킬 것 같다는 불만마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연구소에 근무하는 B(41)씨의 경우도 A씨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자율적 재택근무 신청이라는 회사의 설명과 달리, 이는 업무 특성상 ‘그림의 떡’이었다. B씨의 업무는 여러 분야 직군이 모여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것이어서 1명만 빠져도 업무 자체가 마비된다는 게 이유다.

뉴스1

B씨는 “주변에도 재택을 한다는 사람은 못 봤고, 신청할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며 “아직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 확산세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고, 나이가 많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행여 외부에서 옮아갈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업들에도 재택근무를 강조하고 있고, 대기업 상당수가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따라 재택근무 기간을 시행 및 연장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SK의 경우 대부분의 계열사가 22일까지 재택근무를 한다. 또 그룹 내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등은 이달 말까지 재택근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재택근무가 어렵다던 콜센터 직원들도 결국 재택근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도 현대차, 두산, 코오롱, 효성그룹 등이 격일제 재택근무나 유연근무제 등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지난주 인크루트가 실시한 ‘코로나19 재택근무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은 10명 중 3명꼴이었다. 특히 재택근무 방식이 전 직원이 아닌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한다는 비율이 59.3%에 달했다. 특히 직원들에게 자율적 재택근무를 권고하고 있는 상당수 기업들은 보여주기식 대처만 하고 있다는 불만이 내부에서 나온다. A씨와 B씨의 사례처럼 사실상 재택근무를 신청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신한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은행권 처음으로 고객상담센터(콜센터)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시행한다고 15일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모호함이 혼란을 부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최한솔 노무사는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라고만 권고를 하다 보니 이걸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기업과 노동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단순히 자율적으로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재택근무 등의 관련 지침을 명확하고 강단 있게 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