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국민의 이동·영업·종교활동 등을 제한하거나 중단하는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외국인의 유럽여행을 30일간 금지하는 방안까지 제안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은 16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진자가 7만명에 육박한 유럽에서 각국이 하나둘 국경 폐쇄에 나서자 EU 집행위원회가 국경관리 지침을 발표하며 수습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우리 시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인 조처를 해야 하지만, 필수적인 상품과 서비스는 우리 내부 시장에서 계속 이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자”고 촉구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비상시국에 각국의 국경 통제권은 인정하지만 제한적으로 운용하자는 것이다. 이는 자유로운 국경이동을 보장한 EU의 솅겐조약이 무력화하는 사태만은 막아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EU 집행위는 또 외국인의 유럽여행을 30일간 금지하는 방안을 내놓는 등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EU 외부국경’ 폐쇄를 제안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유럽 내 이미 확산한 상황에서 실질적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외신은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EU 집행위가 국경 통제를 두고 회원국들의 분열과 불만을 진정시키는 동시에 EU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내놨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날 프랑스와 스페인 등이 추가로 국경 폐쇄에 나서면서 사실상 EU 집행위의 시도는 무산된 모양새다.
프랑스 정부는 17일부터 전 국민의 15일간 이동금지령을 내리고 EU와 솅겐 지대의 국경을 한 달 동안 봉쇄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프랑스 국민 약 6700만명(2019년 기준)은 필수적인 사유가 없으면 이동이 금지된다. 프랑스 당국은 경찰 10만명을 동원해 이동금지령 위반을 단속할 예정이다. 오는 22일로 예정된 지방선거 결선투표도 연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담화에서 “우리는 전쟁 중”이라며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면 우리 모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협조를 요청했다.
누적 확진자 수가 1만명에 육박한 스페인도 국경을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포르투갈은 스페인을 오가는 여객기와 열차편의 운항·운행을 모두 중단했다.
앞서 국경 통제를 결정한 독일 정부는 생필품점을 제외한 상점의 영업은 물론 종교시설의 운영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사회적 거리를 넓혀 달라”면서 “국내외를 여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는 이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 모든 행사를 금지하고 식당, 술집 등의 영업을 제한하기로 했다. 그리스도 약국, 은행, 주유소, 슈퍼마켓 등 필수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상점을 폐쇄하고 교회 방문을 금지했다. 세르비아는 다음 달 예정된 총선마저 미뤘다.
이탈리아 베네토주는 주요 거리에 코로나19 검사소를 배치하고 무증상자를 포함한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도 검진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광범위하게 바이러스 검사를 시행하고 필요할 경우 적극적으로 격리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은 이를 ‘한국형 모델’을 도입한 첫 사례로 평가했다. 확실한 의심 증상을 가진 주민을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검사하라는 이탈리아 중앙정부의 방침과는 배치된다. 롬바르디아주도 한국 모델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아메리카도 주민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확대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일대 6개 카운티는 670만여명의 주민에게 3주간 집에 머물라는 ‘자택 대피’ 명령을 내렸다. 워싱턴은 영업점과 다중시설 운영을 중단시키기로 했다. 앞서 워싱턴과 인접한 메릴랜드주는 식당과 술집, 영화관, 체육관 등을 폐쇄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캐나다도 주말 새 코로나19 환자가 두 배로 급증하자 교회, 도서관, 커뮤니티센터 등 공공시설을 잠정 폐쇄하는 확산 방지 대책을 내놨다. 극장, 공연장, 클럽 등 군중이 모이는 민간 업소는 휴관토록 하고 바·식당의 영업 활동도 제한했다.
조성민 기자, 워싱턴=정재영 특파원josung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