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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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심 잡기용' 공약들 내놓지만… 채용·임금 등 알맹이는 빠져 [4·15 총선 공약 진단]

〈2〉 여성 분야 / 민주·통합당 4년 만에 재탕 공약 / 정의당만 임금 성평등 등 내걸어 / 말만 앞세운 ‘비동의 간음죄’ 신설 / 민주·통합당 공약에 포함 안돼 / “여성 인권에 대한 고려 바닥” 비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이 열린 지난해 2월 1일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4·15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여심(女心) 잡기용’ 공약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2018년 ‘미투(Me too) 운동’ 확산 후 첫 선거인 이번 총선에서는 다른 때보다 ‘젠더이슈’에 대한 관심이 유독 뜨겁다. 지난해 발생한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등으로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유권자들의 경각심도 높아졌다. 여성 투표율은 2017년 대선(남 76.2% 여 77.3%), 2018년 지방선거(남 59.9% 여 61.2%) 모두 남성 투표율보다 높았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공통적으로 여성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한 범죄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약속했다. 하지만 주요 정당들의 여성 공약은 여전히 ‘구색 맞추기’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국회 입법권을 좌지우지하는 민주당과 통합당 모두 채용 과정의 성차별금지와 남녀 임금격차 해소 등 실질적인 성평등 방안을 도외시했다. 성별 임금 공시 의무화, 채용 성차별 법인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 배우자 유급 출산휴가 확대 등을 공약한 곳은 정의당이 유일했다. ‘재탕 공약’도 포함됐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내걸었던 ‘스토킹범죄처벌특례법’ 제정 공약을 집권당이 되고도 이행하지 않은 채 이번 총선 공약으로 다시 내놨다.

‘미투 운동’ 이후 도입 필요성이 대두됐던 ‘비동의 간음죄’는 민주당과 통합당 공약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폭행과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보는 현행 강간죄를 동의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미투 이후 여야 5당(민주당·통합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앞다퉈 발의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살펴보겠다’는 수준에서 벗어나질 않고 있다. 민주당은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실효적 방안을 강구하겠다”면서도 ‘비동의 간음죄’에 대해서는 “도입을 검토하겠다”고만 밝혔다. 통합당은 아예 공약에서 배제했다. 그러면서도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 논란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민주당 인재영입 2호 원종건씨의 미투 논란 등을 언급하며 문재인정부와 집권여당을 공격하는 소재로만 활용하고 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비동의 간음죄의 적극 도입을 약속했다. 국민의당은 “거절 의사를 밝힌 혹은 명시적 동의 의사라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관계를 시도했다면 성폭행으로 처벌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정의당 역시 “현행 강간죄로는 처벌의 공백이 생기고, 피해자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하도록 강간죄 법률 체계를 정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이런 공약은 지난 2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을 그저 단기 현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며 “비동의 간음죄는 단순히 형법의 한 조항을 고치는 문제를 넘어 성폭력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고 있느냐를 드러내는 것인데 집권여당이 이처럼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제1야당은 아예 언급조차 없는 것은 여성 인권에 대한 고려가 바닥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순·최형창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