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 비밀방에 유포한 일명 ‘n번방’ 사건과 관련해 동영상 소지자들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아동·청소년음란물에 소지자를 처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지난해 11월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소지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총 2146명이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이 가운데 44.8%가 불기소 처분으로 재판도 받지 않고 풀려났고 40%는 소재불명 등으로 수사가 중지됐다.
다크 웹(익명 웹사이트)에 개설됐던 아동·청소년 음란물 사이트 ‘웰컵 투 비디오’를 운영했던 손모씨는 2018년 경찰에 의해 검거돼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2심에서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2월에 ‘다크웹상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규제현황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아동·청소년 음란물 죄질에 비례한 합리적인 양형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11조 5항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임을 알면서도 이를 소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고, 단순히 시청한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범죄단체 조직죄 등으로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범죄 전문가 중 한 명인 김재련 변호사는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n번방’ 관련자들에 대해 형법상 범죄단체 조직죄 규정을 검토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형법 114조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집단을 조직하거나 해당 단체, 집단에 가입 또는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은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아청법 11조 1항에 따르면, n번방에서 이뤄진 아동·청소년 상대 성착취물 제작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법 114조를 적용하면, 주범 외 가담자들도 중형을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법원도 형량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판사들을 대상으로 아청법 처벌 조항에 대한 양형안 마련을 위한 형량 설문조사를 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대법원은 설문조사를 토대로 통계를 분석 중이며 다음달 20일 열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이다.
진 의원은 “제2의 범죄가 지금도 진행 중”이라며 “성착취 카르텔을 끌어내기 위한 강력한 처벌을 도입해 공범 모두를 단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물 사건을 공론화한 단체 ‘프로젝트 리셋’의 한 활동가는 피의자에 대한 구속수사 의무화, 피해 여성 지원을 위한 24시간 핫라인 구축, AI를 활용한 불법촬영물 필터링 등을 제안했다.
이도형·정필재·이종민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