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여야의 4·15 총선 비례대표 후보 공천이 마무리됐다. 이번 총선은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겠다는 취지로 개정된 선거법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선거였는데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모두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선거법 취지가 훼손됐다. 여야 모두 비례대표 후보 선출 갈등에 휩싸인 채 총선 후보 등록(26∼27일)이 코앞에 닥친 시점에서야 명단을 확정 짓는 바람에 졸속·부실 검증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하는 비례 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더시민)은 원래 함께하기로 했던 소수정당 4곳 가운데 2곳이 이탈하면서 사실상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됐다. 이날 선거인단 투표를 거쳐 확정된 명단을 보면 자체 공모한 시민사회 후보가 1∼4번과 7∼10번에, 소수정당인 기본소득당·시대전환 추천 후보가 각각 5·6번으로 당선안정권에 자리 잡았다. 민주당에서 온 비례대표 후보들은 11번부터 30번까지 이름을 올렸다. 8번을 받은 정필모 전 KBS 부사장은 KBS 재직 시절 ‘부당한 겸직 및 외부 강의’로 감사원으로부터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고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이던 2018년 부사장에 임명되면서 KBS 공영노조의 반발을 샀던 인물이다. 권인숙 원장은 더시민 공천이 정해진 뒤 사직서를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직선거법상 공공기관장의 사퇴 시한(3월 16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이 주도하는 열린민주당에서는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와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부적격 논란에 휩싸였다. 주 전 대표는 후보 면접 때 이중국적이던 아들의 한국 국적 포기, 음주운전 적발 사실을 공개했다. 최 전 비서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 허위로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대학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상태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전북 군산에서 민주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부동산 투기 의혹 논란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에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됐다.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서는 서정숙 한국여약사회 회장이 과거 서울시의원 재직 시 의장 선거 지지를 부탁하는 동료 의원에게서 돈봉투를 받았다가 벌금형(60만원)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위성정당의 비례대표 투표용지상 기호를 끌어올리기 위한 ‘의원 꿔주기’ 행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일부 총선 불출마 의원들을 만나 더시민 파견을 요청했다. 5선 중진 이종걸 의원과 초선 비례대표 정은혜 의원 등 7∼10명의 의원이 더시민으로 이적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도 의원 10여명을 추가로 한국당에 보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선거법 개정으로 총선에서 최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됐던 정의당은 지지율이 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 정당 지지율을 흡수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리얼미터가 지난 16∼2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의당 지지율은 2018년 4월 셋째 주 3.9%를 기록한 이래 최저치인 3.7%를 기록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개정 선거법으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오히려 헌정 사상 최악의 반민주적이고 정당정치를 파괴하는 비례대표 선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며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는 사라지고 양당정치만 강화되고 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선거제도”라고 비판했다.
한편 통합당 민경욱 의원은 인천 연수을 경선에서 민현주 전 의원을 꺾고 가까스로 부활했다. 대구 달서갑 경선에서는 홍석준 전 대구시 경제국장이 이두아 전 의원을 제치고 공천을 받았다.
이귀전·이창훈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