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신경이 온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집중된 사이 양돈농가들이 전쟁을 벌이는 또 다른 바이러스가 움직이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다. ASF는 폐사율 100%에 달하는 돼지전염병이다. 사람은 감염되지 않지만 백신과 치료제가 없어 방역이 방지대책의 전부다.
지난해 9월16일 경기 파주의 한 양돈농장에서 폐사한 어미돼지 다섯 마리가 국내 처음 ASF 양성으로 확인되면서 한국도 ASF 발병국이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경보’ 단계였던 ASF 위기를 최고 수준인 ‘심각’단계로 조정해 유지 중이다.
◆발병 일주일 만에 폐사… 430여건 발생
이름에서 알 수 있듯 ASF의 고향은 아프리카다. 케냐에서 1921년 질병으로 공식화한 뒤 아프리카 전역에 퍼졌고 1950년대 들어 스페인을 통해 유럽에 상륙했다.
ASF는 아프리카와 유럽에 머물다 2018년 중국에서 발병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시아에 확산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돼지 약 2억마리를 감소하게 한 데 이어 베트남까지 큰 피해를 본 ASF는 지난해 5월 북한에서 처음 발견된 뒤 한국까지 파고들었다.
지난 25일까지 한국에서 발생한 ASF는 총 439건이다. 발생 지역은 대부분 북한과의 접경지역이다. 다행인 점은 최근 6개월간 농가 사육돼지에서는 ASF가 발생하지 않고 야생 멧돼지 폐사체에서만 발견된 점이다.
정부는 초기 방역조치를 강력히 취했다. 발생 농장 반경 3㎞ 안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했다. 아울러 파주와 김포에서 발생지역 내에 있는 모든 돼지를 대상으로 수매 신청을 받아 도축한 뒤 이상이 없을 시 출하했다. 최대한 많은 개체를 없애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한 조치다.
26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농가 사육돼지의 경우 ASF 첫 발생 후 23일간 14건 나타난 뒤 추가 발생은 없었다.
환경부는 야생 멧돼지가 남하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옹벽, 낙석방지망, 자연지형지물 구간을 제외한 파주~고성 사이 192.9㎞에 1.5m 높이의 동서 횡단 광역울타리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ASF에 감염된 멧돼지 사체가 광역울타리 바깥에서 발견된 적은 없다.
ASF 바이러스는 현재까지 24종으로 분류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개발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 바이러스 종류가 많아 백신 개발이 어렵고, 발병 7∼10일 이내에 죽기 때문에 면역 연구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멧돼지 먹이 찾아 활동…“봄철 방역에 총력”
기온이 높아지자 방역 당국은 긴장 속에 방역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멧돼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ASF 바이러스는 접촉으로 감염된다. 멧돼지들은 단체생활을 하며 서로 쉽게 바이러스를 옮긴다. ASF에 감염돼 죽은 멧돼지와 접촉한 쥐, 새 등 야생동물이 농장에 내려와 농장에 옮길 수도 있다.
감염된 멧돼지가 산 밑으로 내려오면 인근 사육돼지에 옮길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직접 접촉할 수도 있지만 바이러스 생존기간이 길기 때문에 간접 전파도 쉽다. 예컨대 멧돼지가 논밭에 눈 대소변을 사람이 밟고 축사에 들어가 감염되는 것이다.
실제 구제역 등 가축의 전염병의 감염경로를 살펴보면 사람에 의한 경우가 많다. 농식품부는 양돈농가와 관련 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방역 행동 요령’을 발표했다.
축사에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해야 하므로 농장에 들어갈 때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외부에서 신던 신발이 아닌 전용 신발로 갈아신어야 한다. 또 축사 내외를 매일 소독해 살균한다.
농장 간 바이러스 전파는 대부분 차량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출입차량과 출입자를 통제하고 출입 시 소독해야 한다. 음식물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잔반 사료가 아닌 일반 사료를 줘야 한다. 돼지들을 매일 관찰해 이상이 없는지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농장 관련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지켜야 할 방역 행동수칙이 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ASF 발생국을 여행할 때는 축산농가와 발생지역 방문을 자제해야 한다. 이어 국내 입국 시 돼지고기 또는 돼지고기가 포함된 제품을 반입해서는 안 된다. 신고하지 않고 반입하면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중국 등 여행 후 입국자 휴대품에서 돼지고기 관련 제품을 수거해 검사(2018년 8월∼2019년 12월)한 결과 36건에서 ASF 유전자가 검출됐다.
등산이나 야외활동 시에는 먹다 남은 돼지고기 또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물을 버리거나 야생동물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 바이러스 감염경로는 다양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게 최선이다.
농식품부는 “봄철은 ASF 방역의 최대 고비”라며 “양돈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국민 여러분도 방역수칙을 반드시 지켜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SF는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으며 감염된 고기는 시중에서 유통되지 않으므로 돼지고기는 안심하고 섭취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