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많은 기업들과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는 개학을 연기했으며, 국가 간 이동제한으로 여행은 물론 무역의 막대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범지구적 유행병(팬데믹)을 선언한 만큼 이에 수반된 경기침체가 우려된다.
우선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해야 하겠지만, 이 같은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고, 앞으로 무엇을 보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단순한 글로벌 전염병 이슈로 끝나지 않고 분리주의 확산, 비대면 수요의 증가 등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내다보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첫째, 비대면 수요를 충족시켜 줄 디지털 기반기술과 온라인 플랫폼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글로벌 대기업들과 해외의 유수 연구실들은 벌써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무실, 연구실 폐쇄 등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이에 따른 연구 및 업무절차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수준의 ICT(정보통신기술)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만큼 다양하고 가치 있는 온라인 플랫폼 활용사례를 만들어 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한다. 마스크 유통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여 사회혼란을 막고 신뢰기반을 조성하거나, 5G망을 활용한 VR 실험환경을 구축하는 등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을 앞서갈 응용분야가 많다.
둘째, 생산방식의 변화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Brexit) 몇 년 전부터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에 기반을 둔 디지털 생산(digital fabrication)으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이는 탈유럽으로 인한 생산인력 감소와 글로벌 제조 가치사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디지털 생산은 생산장소의 유연한 변화를 가능하게 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유통·물류에 대한 부담도 급격히 덜어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 비중이 높고, 생산기지가 몇 개 나라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스마트 팩토리와 디지털 생산을 활성화함으로써 코로나 사태 종식 후 본격적으로 대두될 글로벌 제조 생태계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초과학과 기반기술의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한다. 국가 간 이동 제한으로 생산과 물류에 차질을 경험한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핵심기술을 자국에서 개발하려는 기술 폐쇄주의를 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기술보호주의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주요 핵심기술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보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탄탄한 기초과학 연구개발 역량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 세계에서 가장 빨리 진단 키트를 양산하여 단기간에 30만건의 검사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도 기초적인 진단 검사에 대한 연구개발이 선행됐기 때문이다. ‘공부에 왕도가 없다’는 말처럼 기술역량 확보에도 왕도가 없다. 평소에 꾸준히 연구개발에 투자해서 기초·원천 기술이 확보되어야 기술보호주의에 대응할 핵심기반기술이 확보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류가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마다 급격한 기술혁신이 수반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류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며 새로운 기술이 이번에도 위기극복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강국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까지 멀리 내다보며 차분히 기술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안준모 서강대 교수 기술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