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외국인 모델을 쓰는 거야. XX. 외노자 말고 한국인에게 먼저 취업의 기회를 줘.”(트위터 아이디 Ba****), “너무 늦었지만, 누구보다도 짱X들과 조선족을 전부 내보내고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특히 조선족은 모든 분야에서 일을 못 하게 해야 한다. 이들은 우리 경제를 좀먹는다.”(Kim****)
젊은 층이 주로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글이다. 청년 실업과 경기 침체의 원인을 외국인 노동자에게서 찾으며, 혐오와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SNS뿐 아니다. 지난해에는 20대 남성이 “한국에서 떠나라”며 길 가던 미얀마 유학생을 무차별 폭행하기도 했다. 경제 위기로 인한 실업 등에 내몰린 청년층의 분노가 외국인 노동자를 ‘적’으로 등치시켜 분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 해결법, 짱XXX부터 치워야”
25일 세계일보는 젊은 세대의 외국인 혐오 및 인종차별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10, 20대 10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하나같이 “인종차별은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다르다는 점도 인정했다. 특히 SNS를 통해 혐오 표현을 수시로 접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갖게 되는 점을 지적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장모(22·여)씨는 젊은 층의 외국인 혐오 현상에 대해 “취업난을 겪고 있는 우리 같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온라인상에는 그런 글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 서구에 사는 김모(21·여)씨는 “지금 우리가 힘든데 (외국인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듯한 느낌을 SNS에서 많이 느꼈다”며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도 진짜 많고, 인종차별보다 더 심한, 인권을 침해하는 듯한 글도 많다”고 말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젊은 층이 주로 사용하는 SNS는 혐오가 가득하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중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 크게 늘었다. 한 이용자는 코로나 해결법이라면서 미국 방송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SNS에 올렸다. 진행자가 중국에 진 국가 부채를 갚을 방법을 묻자 어린이 출연자가 ‘중국인들에게 대포를 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장면이 담겼다. 이 내용은 2013년에 방송됐다가 물의를 빚고 폐지됐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SNS를 통해 전파되고 있다.
강진구 중앙대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 교수는 “청년들이 (외국인들을) 문화적 다양성에 무임승차한 불공정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성적으로는 외국인이 자신들과 경쟁하지 않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출구 없는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을 견디기 위해 내가 아닌 누군가의 잘못으로 전가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하은호 사단법인 이주민사회통합지원센터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우월한 선진국을 선망하는 의식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무시하는 성향을 보여왔다”면서 “이런 의식을 젊은 세대가 자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내재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게 문제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극복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열린 마음을 갖고 기성세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다문화 강조하지만, 차별 여전
상아탑인 대학 내에서도 혐오와 차별은 존재한다. 서울 소재 A대학은 최근 백인 유학생이 늘어난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이 학교에 다니는 백모(26·여)씨는 “지난해에 서양인들이 학교에 많이 들어오면서 교수나 학생들이 ‘우리 학교도 드디어 글로벌화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씨는 “반대로 동남아나 중국 출신 유학생들은 지금보다 덜 왔으면 좋겠다는 분위기”라며 “인종차별이라는 걸 알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허덕향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활동가는 “중국, 조선족이라 하면 (한국인들이) 가진 편견에서 차별이 비롯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외모적으로 차이가 나면 굉장히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동남아 출신 학생이 화장품 매장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지만 다른 직원들한테 무시를 받다가 그만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외국인 혐오·차별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 중에는 ‘중도입국 청소년’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청소년이다. 청소년기에 언어 장벽과 인종차별을 극복해야 해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학교 밖 청소년’이 되기 십상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혐오와 차별이 확산하면서 감수성이 예민한 미성년 외국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서도 차별은 여전하다. 재단의 도움을 받다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간 B씨는 최근 개강을 앞두고 대학 측으로부터 “수강 신청한 과목을 들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B씨가 중국인이라는 게 이유였다. B씨는 중도입국 청소년 시절부터 줄곧 한국에서 살았는데, 중국이 코로나19의 발원지인 탓에 차별을 받았다는 것이다.
설령 해당 청소년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허 활동가는 “외모와 편견에서 오는 차별은 똑같다. 어려움은 그대로 (안고) 가는 거다”라며 “그 이후에도 상실감은 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박경태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인종차별은)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숙제인 만큼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게 아니다. 보편적 인권 교육과 다문화 교육을 하면 다문화 감수성이 높아지고 우리 사회는 포용력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며 “외국인의 권리 수준을 지켜주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ysah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