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성착취 영상물을 공유한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사건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에 관심이 쏠린다. 영상물 피해자 중 아동·청소년이 포함되어 있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의 처벌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법원의 양형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아 들쑥날쑥한 처벌이 이뤄진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최근 대법원이 양형기준 마련에 나섰지만, 벌써부터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미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해외에 유통하는 행위에 대해서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이 마련돼 있다. 아청법 11조1항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수입·수출하는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아청법은 또 영리를 목적으로 음란물을 판매·배포하는 경우에는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했던 법무부 서지현 검사는 “n번방 운영자들은 무기징역형까지 가능하다”며 “채팅 적극 가담자들도 공범이기 때문에 이들도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입장료를 낸 유료방 이용자들은 제작 공범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서 검사는 “유료방에서는 자기들 말로 ‘후원금’을 냈다고 하는데, 저는 이것을 제작비 펀딩으로 본다”며 “그럼 당연히 제작 공범으로 볼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처럼 처벌 조항은 정해져있지만 뚜렷한 양형기준은 없어 형량은 판사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n번방’ 사건이 알려지기 전인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설정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아직 설문 분석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이미 설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법원 젠더법연구회 소속 판사 등 법관 11명은 25일 법원 내부 게시망 코트넷에 양형기준 설정을 위해 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설문조사에서 제시된 양형 범위가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