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만든 성착취물을 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기소된 ‘태평양’ 이모(16)군의 사건을 맡았던 오덕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자진해 해당 사건에서 손을 뗐다. 오 부장판사의 사건 배제 등을 요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온 지 나흘 만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군의 담당 재판부를 오덕식 부장판사가 맡은 형사20단독에서 해당 재판부의 대리부인 형사22단독(박현숙 판사)으로 재배당했다고 30일 밝혔다.
‘박사’ 조주빈(25·구속)의 후계자로 불린 이군은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태평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아동 성착취물을 유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오 부장판사가 이군의 사건을 맡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인 지난 27일 오 부장판사의 사건배제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오 부장판사가 지난 2018년 가수 고(故) 구하라씨를 불법 촬영, 폭행·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최종범씨의 1심 재판에서 불법 촬영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것에 “성인지감수성 제로에 가까운 판결, 피해자를 2차 가해했다”고 주장했다. 오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고 장자연씨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청원인은 “이런 판사가 지금 한국의 큰 성착취 인신매매 범죄를 맡는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며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국민들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그는 절대 다시는 성범죄에 판사로 들어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이미 배당된 사건에 대해 재판장이 직접 그 사유를 기재한 서면을 제출해 사건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 오 부장판사는 해당 청원에 대한 관심이 쏠리자 스스로 이군의 재판을 다른 재판부에 배당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청원은 이날 7시 기준 동의 수 41만명을 넘어서는 등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오 판사가 스스로 재판부 교체를 요구한 것은 이런 여론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측이 힘을 얻는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