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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만 코로나19 외국인 확진자 무료 치료해준다? [FACT IN 뉴스]

‘대체로 사실 아님’
지난 3월 3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옥외공간에 설치된 개방형 선별진료소(오픈 워킹스루)에서 런던 여객기를 타고 입국한 외국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진단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검증대상]   

 

“한국 정부만 외국인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의료비 전액 지원한다?”

 

코로나19 외국인 확진자에 진단검사, 치료, 격리 비용 등 의료비 전액을 지원하는 정부 방침을 두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심심찮게 제기되는 의혹이다. 1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코로나19 치료에 드는 비용은 경증환자일 시 최대 478만 원, 중증 환자일시 최대 5500만 원에 달한다. 적지 않은 비용을 국고로 충당하는 건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다.

 

정부에 따르면 외국인 의료비 지원은 ‘공익’ 목적이 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김강립 1총괄조정관은 지난달 30일 “의료비를 외국인에게 자부담시키면 치료를 피해 숨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2차 감염이 확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도 서울 종로구 서머셋팰리스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 확진자가 발생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1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입국자들이 KTX 광명역으로 향하는 해외입국자 특별수송 공항버스에 탑승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다른 나라는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를 어떻게 부담하고 있을까.

 

세계일보 취재 결과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를 정부가 부담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도 많다. 다만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어야 하는 ‘조건부 지원’이 많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외국인 의료비를 지원하다가 확산 추이가 장기화하자 이를 철회한 나라도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만 코로나19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를 지원한다는 의혹은 ‘대체로 사실 아님’으로 판정했다.

 

[검증과정]

 

◆ 코로나19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 지원, 국제 권고 사항 있지만 의무는 아냐

 

한국은 국제보건규칙(IHR)과 감염예방법에 의거해 코로나19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IHR 제40조는 “거주 목적이 아닌 여행자에게는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진료, 접종, 격리에 대한 비용 청구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2005년 해당 조항이 신설됨에 따라 한국도 지난 2009년 “외국인 감염병 환자 등의 입원치료, 조사, 진찰 등에 드는 경비는 국가가 부담한다”는 내용의 감염병예방법 제67조를 신설했다.

 

국제보건기구(WHO)가 제정하는 IHR은 권고사항이라 법적 강제력은 없다. 따라서 각국의 코로나19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 지원 여부도 사실상 자율적으로 정해진다.

 

◆ 의료보험가입자만 의료비 지원하는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중국은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중국에 거주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하면 의료비 전액을 지원한다.

 

주중대한민국대사관 경제과 담당자는 세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발병 초기엔 거주 기간과 상관없이 모든 외국인에게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의료비 전액을 지원했지만, 3월 말 이후 중국 국내 확진자가 줄고 외국에서 유입되는 확진자가 늘면서 방침을 바꿨다”며 “중국 지방정부들은 중국에 꾸준히 거주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하는 외국인에 한해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된 외국인만 지원 대상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 1월 언론사 버즈피드 재팬과 인터뷰에서 “3개월 이상 장기 체류해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외국인만 코로나19 의료비 지원대상”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 2월 코로나19를 ‘지정감염(指定感染)’으로 지정함에 따라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된 내·외국인은 코로나19 의료비를 전액 지원받는다.

 

대만 역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된 외국인에게만 지원한다. 다만 출신국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지난 3월 16일 대만 중앙전염병사령부(CECC)는 “국민건강보험 카드가 있는 외국인만 의료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외국인의 경우 대만 국민건강보험은 4개월 이상 장기 체류해야 가입할 수 있다.

 

필리핀도 국민건강보험 가입된 외국인만 지원 대상이지만, 일본과 대만에 비해 가입 기준이 느슨하다. 필리핀 국민건강보험은 여행 등 목적으로 입국한 관광비자 소지자도 가입할 수 있다. 필리핀 언론사 비즈니스미러는 지난 2월 27일 “국민건강보험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거나 확인된 환자에게 의료비 전액 지원이 가능하도록 혜택을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 코로나19 확산 장기화에 외국인 의료비 지원 철회한 나라도

 

의료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코로나19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를 지원하다 사태가 장기화하자 이를 철회한 나라도 많다. 싱가포르와 베트남, 홍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지난 3월 7일부터 단기 체류자에 한해 치료비를 청구하고 있다. 단기 체류자 검사비와 장기 체류자 검사·치료비는 계속해서 정부가 부담한다. 싱가포르 보건부(MOH)는 지난달 9일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짐에 따라 공공병원 자원 활용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며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베트남은 지난달 13일부터 체류 기간과 상관없이 외국인에게 의료비를 개인 청구하고 있다. 응웬 쑤언 푹 총리는 이날 코로나19 대응 정부 상임회의에서 “지금까지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를 청구하지 않았지만, 향후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앞으론 모두 개인에게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은 1월29일 외국인 의료비 지원을 철회했다. 홍콩특별행정구(HKSAR) 정부는 이날 “코로나19 감염자가 홍콩에서 무료 치료를 받기 위해 홍콩으로 오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향후 외국인에게 코로나19 의료비를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31일 의료 체계가 열악한 인도네시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한국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의 귀국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재인도네시아 교민사회와 현지 매체가 밝혔다. 사진은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공항. 연합뉴스

[검증결과]

 

코로나19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도 많았다. 다만 ‘의료보험 가입자’로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의료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의료비를 전액 지원한다. 불법체류자도 포함된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다 포괄적인 기준으로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를 지원하는 건 사실인 셈이다. 그렇더라도 전날 기준 총 누적 확진자 9786명 중 외국인 비중은 42명으로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한국 정부만 코로나19 외국인 확진자 의료비를 전액 부담한다는 논란은 ‘대체로 사실 아님’으로 판정됐다.

 

박혜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