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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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여행 제한만으로 전염병 못 막는 이유

입출국 90% 강력히 제한해도 / 확산 시간 늦추는 효과 있지만 / 감염 최종 규모는 크게 못 바꿔 / 지역 내 방역 노력 병행되어야

여행 제한이 코로나19의 전염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본 논문이 학술지 사이언스에 지난 6일 발표되었다(doi:10.1126/science.aba9757).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교의 베시피아니 교수를 포함한 여러 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은 감염병 확산 모형 중 하나인 SEIR 모형을 이용했다. 감염이 안 된 S상태의 사람은 전염력이 있는 I상태의 사람에 의해 감염되면 E상태가 된다. E상태의 사람은 감염은 되었지만 아직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시키지는 않는데, 잠복기가 지나 전염력이 있는 I상태로 바뀌면 S상태의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 I상태에 있는 감염자는 결국 R상태로 바뀐다.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는 사람, 치료 중 사망한 사람, 그리고 면역이 생긴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R상태에 이르면 더 이상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없게 된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물리학

사람들이 매일 서로 활발히 왕래하며 살아가는 작은 마을을 떠올려보자. 이처럼 집단 안의 사람들이 자주 고루 섞이는 상황을 가정하면, S상태의 사람이 감염되는 확률은 I상태에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각 상태에 있는 사람의 숫자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네 개의 미분방정식으로 기술하는 것이 바로 SEIR 모형이다. 논문의 저자들은 전 세계 약 200개 국가 이곳저곳의 3200개 집단 하나하나를 위에서 설명한 SEIR 모형으로 기술했다.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사람들이 이동하는 과정도 저자들은 모형에 포함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 항공망과 육상 교통 데이터에서 추출한 사람들의 실제 이동 정보를 이용했다. 이런 방식의 모형을 메타인구 모형(metapopulation model)이라 한다. 2013년 사이언스에 출판된 다른 논문에서도 마찬가지의 방법을 이용해 감염병 확산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고, 이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H1N1 독감의 현실 전염 경로와 성공적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중국이 우한시에 강력한 여행 제한을 시작한 날은 1월 23일이다. 병원에 수용되지 않은 많은 감염자가 이미 중국 안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으며, 우한시에 대한 강력한 봉쇄의 효과는 중국 내 전염을 3~5일 지연시키는 정도였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었다. 또한, 중국의 강력한 봉쇄 정책으로 2월 중순까지 전 세계로의 전염은 무려 80% 감소 효과가 있었다고 추정했다. 감염병 확산의 이론 모형을 이용하면, 여행 제한 정책이 어느 정도의 장기 효과가 있을지를 다양한 시나리오를 적용해 추정해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입출국을 90% 정도로 강력히 제한하는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에서조차도, 대규모 확산이 시작하는 시간이 늦춰지는 효과는 있지만 확산의 최종 규모를 크게 바꾸지는 못한다는 결론을 논문은 얻었다.

감염병 확산 이론 모형을 이용한 기존의 많은 연구도 마찬가지의 일관된 결론을 보여준다. 국가 간 사람들의 이동을 강력히 제한해도, 전 세계로 전염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국경을 넘으려는 소수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 간 여행 제한의 중요성은 외부로부터의 전염을 전면적으로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전염에 대비해 각 국가가 방역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다는 면에 있다. 감염자의 조기 발견과 물리적 거리두기 등으로 지역 내 전염을 줄이는 노력이 없다면 출입국 제한의 확산 방지 효과는 제한적이다. 90% 정도로 강력한 여행제한을 실시해도 전염의 최종적인 규모가 크게 줄지 않지만, 같은 정도의 여행제한이 지역 내 감염률의 50% 하락과 동반한다면, 전염의 최종 규모가 크게 줄어든다는 결론을 논문은 얻었다. 논문 저자들이 제안한 효율적인 방역의 방법이 우리나라의 노력과 비슷한 면이 많다.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감염자를 찾아내 이들을 격리 치료하는 노력과 함께, 사람들 사이의 거리두기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노력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여행제한만으로는 최종 전염의 규모를 줄이기는 어렵다. 비슷한 정도로 출입국을 제한해도 나라마다 전염 확산의 속도가 다른 이유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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