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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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죄 뒤따르는 신상공개 요구… 범죄예방 효과는?

전문가들 “경고 메시지로서 의미는 분명… 정리된 지침 필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고유정, 김성수, 장대호 등 이름만 들어도 덜덜 떨리는 강력범들의 얼굴은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2항에 따라 신상정보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성범죄알림e 사이트를 통해서는 언제든 법원이 신상공개를 결정한 성범죄자의 얼굴과 주소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재범과 동종범죄 발생을 예방하고 지역사회를 보호한다는 목적이다.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텔레그램 대화방 ‘박사방’을 통해 유포한 운영자 조주빈(25·구속)의 신상정보도 공개됐다. 조씨에게 적용된 법적 근거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다. 그동안 성범죄자 신상공개는 선고가 모두 끝난 경우에만 이뤄졌으나 지난 2월부터 시행된 이 법에 따라 피의자인 조씨도 신상공개가 결정됐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은 최근 이를 발표하며 범죄의 중대성에 더해 국민의 알권리와 동종범죄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을 이유로 들었다. 이후 조씨가 나온 대학교, 교내 활동과 봉사활동 등 과거 이력까지 인터넷에 퍼졌다.

◆학계에서 아직 연구 중인 문제, 범죄자 신상공개제도

 

조씨 신상공개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가 2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울 정도로 국민적 이견이 없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2000년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가 도입된 당시부터 이 제도의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신상공개제도를 통해 핵심적 기대효과인 재범을 방지하고 동종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상관관계를 뚜렷하게 소명한 연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범죄학회, 한국교정학회,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등에서 발표한 연구자료 모두 공통적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공동으로 작성한 ‘성폭력범죄자 사후관리시스템에 대한 평가연구 - 신상공개제도의 효과성 연구’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신상공개 대상자 비율이 전체 성범죄자 중 소수라 재범 억제나 지역사회 보호 효과가 있더라도 매우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00년과 신상공개제도 도입 이후인 2011년 성범죄자 통계를 비교했을 때, 성범죄자 중 재범자비율은 59.7%에서 46.0%로 줄었으나 동종재범자의 비율은 12.6%에서 18.5%로 늘어 특별히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강화하는 성범죄 보안처분, 낮아지는 신상정보 공개명령

 

법원이 최근 신상정보 공개보다 신상정보 등록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에 더 비중을 두는 것도 신상공개제도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 중 하나다.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의 경우 개인정보가 일반 시민에게 공개되지는 않으나 범죄자는 정해진 항목의 정보가 바뀌면 일정 기간 안에 재등록해야 하는 등 보완됐다. 법원이 성범죄자 대부분에게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명령하는 것도 강화한 보안처분의 일종이다.

 

이런 추세 속에 법원의 신상공개 명령 건수는 감소해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에 국한해서 보면, 등록 대상자가 2013년 2709명에서 2017년 3195명으로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공개대상자 비율은 43.4%에서 9.7%로 크게 줄었다.

 

성범죄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는 연구가 더 미흡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단정하기 어렵다.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상정보가 공개된 범죄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범죄자 가족의 인권도 생각해야 하긴 한다”며 “혐의가 다 드러나지도 않은 피의자를 일찍이 공개해 ‘마녀사냥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한 교수는 “신상공개제도가 단순히 피의자를 응징하는, 처벌적인 맥락에서 동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예방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알권리 충족이라 하지만, 호기심을 만족시킨다든지 응보의 감정의 풀기 위한 수단이 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가 갖는 의미는

 

그럼에도 성폭력특례법 적용사례 1호인 조씨는 현재 드러난 혐의와 증거만으로도 신상공개 결정이 납득할 만하고, 추가 수사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전문가들은 제시했다. 윤덕경 연구위원은 “조주빈이 이미 많은 죄를 졌고 증거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은 것도 아닌 데다 경찰이 개인의 판단이 아닌 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한 사안”이라며 “피해자가 조씨를 보고 신고할 용기를 더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상희 교수는 “테러리스트가 사회를 헤집는 데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과 같다”며 “미성년자 성착취 같은 경우 얼마든지 유죄판결이 나기 전에 사회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적으로는 상관관계를 소명하기 어려워도 구체적 사건에 한해 소명될 가능성은 있다”고 부연했다. 한 교수는 이번 피의자 공개를 통해 ‘n번방’ 운영·관계자에게는 대화방 운영이 반인도적인 범죄라고 선언하는 의미, 가입자 26만 명에게는 ‘더 이상 들어가지 마라’와 ‘가진 영상이 있어도 배포하지 마라’는 두 가지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고 풀이했다.

 

아직 모든 혐의가 알려지지 않고 선고 형량도 없어 범죄의 심각성을 객관화하기 어려운 피의자 신상공개일수록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는 공통적으로 지적된다. 매뉴얼을 수립할 필요성은 기존 신상공개제도 연구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이다. 윤덕경 연구위원은 “특정 범죄가 사건화하면 그때 국민감정에 따라 과하게 조치하는 부분이 없도록 체계화하도록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교수도 “당연히 필요하다”며 “이번 사건은 첫 사례다 보니 갈팡질팡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정리된 지침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