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근당 회장 장남, 영장 기각…어떻게 보시나요
의약품 제조업체 종근당 이장한(68) 회장의 장남 이모(33)씨가 여성의 신체를 불법적으로 촬영한 혐의로 체포됐다가 최근 석방된 사실이 세계일보 보도<세계일보 4월3일자 8면 참조>를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혜화경찰서는 이 회장의 아들 이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그의 구속영장을 지난 1일 기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법 최창훈 부장판사는 “트위터 게시물에 얼굴이 노출되지는 않은 점과 피의자가 게시물을 자진 폐쇄한 점,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의자를 구속할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사정당국에 따르면 이씨는 최근 트위터에 자신이 3명의 여성과 각각 성관계를 가진 영상을 몰래 찍어 올리는 등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여성들은 이씨와의 성관계는 동의했지만 영상을 촬영하거나 유포하는 데는 동의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피해자 보호 등을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건 아니잖아요”
법원이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을 두고 국민 ‘법 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특히 최근 미성년자 등을 유인해 협박하고 성착취물을 찍어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씨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거센 상황에서 이같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더 부각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성폭력처벌법 위반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닙니다. 피해자의 의견과 관련 없이 형사소추할 수 있다는 말이죠. 또한 성폭력처벌법 제14조에 따르면 촬영대상자의 동의 없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영상을 촬영하거나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이씨가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에 피해자들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습니다. 또, 이씨가 직접 게시물을 지웠고, 그의 주거와 직업이 일정한 점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최근 n번방 사건과 관련해 피고인의 형사재판을 맡은 오덕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교체됐습니다. ‘n번방 담당판사 오덕식을 판사 자리에 반대, 자격박탈을 청원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40만명이 넘는 높은 지지를 받자 부담을 느낀 오 판사가 스스로 재배당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오 부장판사는 사망한 고(故) 구하라의 전 연인 최모씨의 재판을 진행했는데, 상대적으로 가벼운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죠.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판사를 교체해달라’는 국민청원에 특정 형사사건의 담당 판사가 교체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최근 디지털 성범죄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 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서 이들을 단죄할 법원에 대한 국민적 눈높이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일 겁니다.
경찰은 이씨에 대한 보강 수사를 한 뒤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는 방침입니다. 이 사건의 추이를 계속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