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가 세계를 잠식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전 인류를 꼼짝 못하게 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람들의 불안은 점차 가중되고 있다.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전세계적으로 이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도 혹시 저 사람이 확진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부터 조금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나도 혹시? 하면서 불안해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처럼 불안감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덮은 적이 있었던가?
불안을 극대화한 영화 ‘멜랑콜리아’(감독 라스폰트리에)에서는 우리 삶 앞에 놓인 불안을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스틴(커스틴 던스트)을 통해 드러내며, 전세계적 불안 요소로는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의 거대한 행성이 점차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행성 이름이 우울증이라는 뜻의 ‘멜랑콜리아’이기도 하고, 거대한 행성이 언제 지구와 부딪칠지 모를 불안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서사보다는 불안의 이미지를 마치 명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에게 전해주는 데 집중한다.
긴 오프닝은 대사 없이 바그너의 장중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악의 분위기가 파편화된 초현실주의 이미지를 감싼다. 메인 포스터인 웨딩드레스를 입은 저스틴이 부케를 들고 물 위에 누워 있는 이미지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그린 밀레이의 그림에 대한 오마주이다.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에 바쳐진 그림을 오프닝부터 오마주했다는 것은 불안과 죽음을 연결시키고자 한다는 종말론적 주제의 복선이다.
언니 클레어(샤를로트 갱스부르)의 멋진 고성 별장에서 결혼식을 하는 저스틴에게 결혼식날은 가장 행복한 날이 되어야겠지만, 무거운 사슬이 온 몸을 감싸는 것 같은 기분에서 놓여나지 못한 그녀에게는 불안과 우울이 최고조에 달하는 날일 뿐이다. 64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커스틴 던스트의 연기는 그녀의 내면적 불안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거대한 행성이 지구로 다가오는 천재지변에 대한 인물들의 불안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워야 하는 우리의 불안감과 상당히 유사하다.
불안할 때일수록 단순히 빠져나오려고 초조해 하지 말고, 오히려 불안감에 대해 깊이 성찰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초연해지는 태도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역설적으로 불안을 통해 삶이 더 견고해진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황영미의영화산책]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기사입력 2020-04-03 22:47:47
기사수정 2020-04-03 22:47:46
기사수정 2020-04-03 22: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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